한국일보

선거에서 경제가 이슈가 되지못한 이유

2000-11-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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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윌슨 (UCLA 명예교수)

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 현직 대통령 출신당의 후보가 낙승을 거두고 불황일 때면 패배를 한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정설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고어가 고전을 했던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 정설 대로라면 고어는 부시에 최소한 8~10%의 지지율 차를 보이고 당선됐어야 옳은데 말이다.

이는 지난 92년 선거에서 데저트 스톰 작전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던 현 부시 후보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경기침체로 말미암아 민주당의 빌 클린턴에게 패했던 사실에서도 잘 입증이 된다.

정치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여기에는 3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대한 국민들의 적대감이 고어에게 쏠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어가 가정적인 남자고 캠페인 기간 클린턴과 차별화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해진다.


다음 두번째로 유권자들의 의식을 잘못 읽었다는 견해다. 고어와 부시 두사람 모두 중도적 성향을 가진 유권자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펼쳤지만 중도에서 보수진영을 위주로 한 부시에 비해 고어는 좌파에 많이 치중했다. 그런데 미국 유권자의 70%는 자신이 중도 내지 보수파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진보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어가 캠페인 기간 ‘큰 부자’ ‘빅 오일’ 등의 표현을 한데 대해 반감을 품게 된 유권자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고어는 진보성향의 표를 얻기 위해 부자들에 대한 공격을 한 셈인데 중도파로부터 반감을 사는 역효과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사실 고어는 클린턴보다 진보적이다. 그래서 중도파의 표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른다.

마지막 세번째 설명은 금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경제보다는 인물에 더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고어가 더 스마트하고 아는 것도 많으며 준비된 후보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정직성과 솔직함 그리고 지도력에서는 부시에게 더 점수를 줬다. 앨런 심슨 전 상원의원도 유권자들은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후보의 정책이나 사상보다는 후보의 인격과 특성에 대해 더 관심을 둔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유권자들은 오래 지속된 호황으로 말미암아 경제 이슈에 둔감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는 10년 가까이 호경기가 지속되고 있는 시점에 치러졌다. 예산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주식시장은 그동안 붐을 이뤘다. 이렇게 오랜 호황이 지속되다 보니 사람들은 현재의 호황이 민주당 정부 덕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느끼게 됐을 수도 있다. 이 주장이 맞다면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 "현정부의 잘못으로 못 살게 됐다"는 ‘과거지향’에서 "앞으로 누가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갈 것이냐"는 ‘미래지향’으로 바뀐 것이 된다. 물론 전부터 일부 의식 있는 유권자들은 미래 지향적 투표를 해왔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그랬던 예는 없다.

어떤 이론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선거에서 고어가 자신에게 유리할 ‘과거의’ 경제치적에 대한 홍보 대신 ‘미래의’ 자신을 PR하는데 주력함으로써 고전을 자초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바로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30년전만 해도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성실하게 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녁식사 도중 누구를 찍을 것인가 묻는 전화가 걸려온다면 대꾸조차 않고 끊어버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응답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도도 낮아지게 된다. 또 여론조사 대상을 등록 유권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투표에 참가할 뜻이 있는 사람으로 삼고 있는 것도 신뢰도 하락에 일조를 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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