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학교앞 교통 안내원이 되어보니

2000-1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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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배<코로나>

미국사람들과 사귀다 보면 그들에게서 자주 듣는말이 있다. “쉬고싶다”“조용히 살고싶다”그들은 오래동안 일해 오면서 피곤도 하겠지만 얼마 남지않은 시간에 대한 초조감이 더해서 은퇴를 생각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민생활 20년만에 은퇴하였다. 은퇴 후의 꿈이 있었다. 잔잔한 호수가에 앉아서 낚시를 드리우고 사색 한다든가. 타오르는 저녁 노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든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점차 은퇴생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지루하고 답답하고 짜증이 늘고 아내와의 다툼이 잦아졌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무슨일이든 보람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바로 두집 건너의 필리핀 노인이 생각 났다. 이 노인은 길가에서 어린이를 학교에 건너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100도가 넘는다. 그 더운 뙤약볕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하고싶다고 하니 곧바로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 이 일은 경찰서 소관이다. 한달가량 심사 끝에 채용되었고 나는 미국공무원이 되었다.

일은 더워서 힘들지 어린이들이 좋아서 별로 피곤하지않고 그들은 노인인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다. 거의 백인이고 한국아이들은 많지 않다.

길가에서 멈춤 사인을 들고 어린이들을 건너게 해주지만 나의 책무는 단순치않다.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어린이들을 건너게 해주는데 그사이를 뚫고 통과하는 자가 있어 호각을 불어 세우려고 하니 그냥 달아나버려 차번호와 증인 이름을 적어 두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지나감으로 세우고 보니 한인이었다.

“당신 어제 교통위반을 했소. 어린이들이 한참 지나가는데 통과했소. 나는 경찰에 보고할 의무가 있소. 티켓은 작으마치 400달러요”
“400달러요? 같은 동포끼리 잖아요. 좀 봐주세요”

“여보시오! 나 ‘봐주세요’하는 소리가 듣기싫어 미국에 온 사람이오”
한국사람들은 별로 바쁜 일이 없는데도 서두르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다. 여기 이 장황한 글을 쓰는 이유는 미국의 어린이 관련 교통법규가 얼마나 엄한가를 강조하고 싶어서 이다.특히 명심해야 할것은 학교버스가 빨간 신호를 번쩍이고 서 있는 동안에는 길 건너편의 차들도 무조건 서 있어야한다는 엄격한 규정이다. 올림픽가 같은 넓은길 건너편에서도 반드시 차를 세우고 신호가 꺼질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들이 길건너에 있는 버스를 놓칠까봐 급하게 길을 건너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항상 여유있는 운전습관이 몸에 배이도록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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