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2000-11-07 (화)
요즈음 매일처럼 TV 화면에 보도되는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청소년간의 유혈충돌을 보고 있노라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아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해 본다. 헬리콥터와 장갑차가 동원된 무력에 고무줄 새총과 돌팔매질로 맞서는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무모하고도 슬픈 도전이 시오니즘이 빚어낸 역사적인 그들의 숙명을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진다.
이 비극의 씨앗은 2차대전의 전승국 지도자들이 우리 한반도에 한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38선을 그었듯, 중동 땅에 그들 마음대로 새 지도를 그려 팔레스타인 땅에 수천년 전의 연고권을 내세운 유대민족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데서 시작되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고 그 땅의 주인행세를 하는 데서 두 민족간의 유혈충돌은 시작되었고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대부격인 미국은 무기와 경제원조로 이스라엘 건국을 도왔고 또 이스라엘은 수백만명의 팔레스타인 민족을 요르단과 레바논등 외국으로 강제 추방하고 현지 주민마저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서지구로 주거지를 분리 제한하여 팔레스타인 민족의 힘의 결집력을 약화시키고 직업, 전기, 통신 그리고 식수마저 그들의 통제하에 두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목줄기를 장악, 그들의 저항을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로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2차대전중 나치 독일로부터 받은 유대인의 수난은 유대족에 대한 타민족의 감정을 희석시켜 왔는데 어제 박해를 받았던 자가 오늘은 가해자로 팔레스타인 민족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다.
항상 문제의 핵심에는 강한 자의 독선적인 논리가 존재하고 있고 거짓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이 팔레스타인민족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있고 민족적, 종교상의 도그마가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우주는 상대성이란 견제와 인력이라는 균형으로 공전과 자전이라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우주의 평화를 구현하고 있고, 이 평화를 지구상에도 정착시키려는 것이 신의 의지이다.
이제 미국은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하여 양심에 후회 없는 공정한 중재자가 되어야 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인권과 생존을 위해 이스라엘에 대하여 효과적인 제재를 가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엉덩이에 뿔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는 유대계 미국인의 파워가 너무 강해졌다.
아브라함을 같은 조상으로 둔 자손들이면서도 유대인 한 사람의 죽음에 10배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살육하는 그들의 신앙은 무엇이길래 그처럼 잔인한지? 아우슈비츠의 대학살에 비참하게 죽어간 유대인 부모형제들의 슬픈 눈물자국이 아직도 젖어 있는데도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부모형제의 피눈물을 이스라엘과 미국은 왜 보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