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자만 알고 사는 고통

2000-1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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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주환<무역업>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호화롭게 외국여행을 하고 돌아와 입 다물고 사는 것이란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외국의 기상천외한 좋은 구경을 다 했는데 그 자랑을 못하고 혼자만 알고 참는 고통이 이만 저만 크지가 않다는 뜻이다.

한번은 골프를 좋아하는 가톨릭 신부가 어떤 엉터리 핑계를 대고 일요일 미사 집전을 다른 신부한테 맡겨 놓고 몰래 골프를 치러 갔는데 뜻밖에도 평생 처음으로 홀인원을 했다. 그래서 함께 치던 친구가 하느님께 “하느님은 정말 너무하십니다. 저렇게 일요일 미사를 땡땡이 치고 골프 치는 신부한테 홀인원의 행운을 주는 것은 정말 공평치 않습니다”하고 강력한 항의를 했다. 그러자 하느님이 “저 신부가 홀인원 한 것을 아무한테도 자랑을 못하고 혼자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할텐데 그 고통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 내가 저 미사를 땡땡이 친 신부를 혼 좀 내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느니라”고 말씀했다고 한다. 자기의 큰 자랑거리를 남에게 자랑을 못한 채 입을 다물고 벙어리처럼 그냥 산다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일 것이다.

미국 사는 한인 중에는 남한테 자랑하고 싶지만 남에게 공개조차 할 수 없는 괴상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뱀장어, 잉어, 미나리, 홍합, 전복, 대합 등이 엄청나게 많은 곳을 아는데 남에게 자랑을 못하고 혼자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의 고등학교 선배 한 분은 굴이 많은 해변을 아는데 10여년 이상 아무한테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자기 친형제들끼리만 일년에 한번씩 굴을 따러 간다. 그것을 남한테 알려주면 금방 그 소문이 퍼져서 그 해변의 굴이 다른 한인들에 의해 다 없어지는 것은 물론 씨까지 마르기 때문이다. 미국사람들은 그런 곳을 혼자 알아도 자기네가 한번 잘 먹을 만큼만 채취하는데 한국사람은 자동차 타이어가 터질 만큼 많이 잡아다가 일가친척 친구들한테 나눠주고 또 일년 이상 먹을 만큼의 온갖 굴젓을 담아두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대량 채취하여 여기 저기 한인들한테 팔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은 그 씨가 말라야 끝장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혼자만 알고 남에게 안 가르쳐 주는 사람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나와 함께 등산을 몇번 다닌 한 친구는 고사리 많이 나는 데를 한 곳 알고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고사리가 많은 게 아니라 고사리 재배 농장처럼 많아 낫으로 베어올 정도란다. 그도 지난 10여년간 그것을 내외만 알고 외동딸이 가르쳐 달라고 졸라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해마다 한번 정도 차에 태우고 갔다 와도 그 곳의 방향이나 위치를 전연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동네 할머니들만 모시고 다녀오곤 한다.

그런데 현재 나에게 걱정이 생겼다. 그가 나를 그 곳에 데리고 갈 용의가 있는데 다녀와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을 해야 한다는 특별 제의가 들어왔다. 나는 현재 그 대답을 놓고 며칠동안 이리저리 고민중이다. 그 고사리 밭에 다녀와서 아내는 물론 친구나 이웃한테도 말해서 안 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힘들까.

나는 그냥 모르고 사는 게 더 편안할 것 같아 그의 친절한 특별 배려를 사양할까도 생각한다. 정말 세상 살다가 별 고민도 다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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