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자 산다는 것

2000-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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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남자 없이 혼자 살아가겠다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다. 미국 여성인구의 40%인 4,300만명이 싱글이다. 구체적인 연령으로 분류하면 25~55세 여성 가운데 65%만이 결혼하며 독신녀가 1960년에 비해 20%나 늘어났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8월 29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누가 남편을 원하는가”라는 타이틀로 미국의 급증하는 독신녀 현상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왜 여성들은 남자와의 결혼을 꺼려 하는가. 남성들도 반성의 자료로 삼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할 사항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어떤 점을 제일 싫어 하는가. 타임과 CNN여론 조사에 의하면 “여성을 너무 컨트롤하는 자세”로 나타나 있다. 다음이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고 그 다음이 “정서적으로 여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순으로 되어 있다. 일에 너무 열중해서 싫다는 여성은 의외로 적었다.


‘타임’지의 스토리를 다 읽고 나면 결국 미국 여성들중 상당수가 독신으로 지내려 하는 이유는 누구한테 구속 안받고, 즐겁고 자유스럽게 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여성이 독신주의자로 지내는 필수조건은 경제적인 자립이다. 미국이니까 가능하지 한국에서는 아직 ‘어려운 소리’에 속한다. 이는 독신을 주제로 한 여성작가들의 단편 소설에서 잘 표현돼 있다.

“나는 성인이 된 후 오로지 나의 경제력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가지가 있었다. 나만의 공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아도 좋을 문화적 여유, 기동력을 발휘할 승용차등이다. 그것이 남자를 갖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세가지는 고사하고 목구멍에 풀칠할 걱정부터 해야 했다. 능력있는 누군가를 만나야만 했다”(김현영의 ‘웨딩, 웨딩드레스’에서)

“나는 아직도 젊은 내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 있었다.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갈 것인가 현모양처로 살아갈 것인가. 회사의 여직원에는 딱 두가지가 있다. 영계와 노계. 노계중에서는 대외홍보용으로 키울만한 발군의 인재만이 과장도 되고 부장도 된다. 나머지는 결혼과 동시에 자동 포장되어 상자에 담기는 공산품처럼 줄 맞춰서 퇴사한다.

나는 인재보다는 평범한 노계다”(박지경의 ‘어둠보다 익숙한’에서)
위의 글들은 한국에서 여성이 독신으로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이 혼자 살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서도 결국 결혼에 골인하는 것은 혼자 사는데서 오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취업인구의 55%가 여성이고 미혼이냐 기혼이냐는 직장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70년대만 해도 어려웠으나 지금은 주택, 자동차 융자도 독신녀에게 문이 열려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주택의 1/5이 독신녀가 구매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신녀 인구의 60%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미국 여성들은 정자은행을 찾고 있다. 남자 없이도 지낼수 있는데 아이는 갖고 싶다는 것이다. ‘타임’여론조사에서도 61%의 독신녀가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대답하고 있다.

‘자유’는 독신주의자의 상징이다. 그러나 ‘자유’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것은 ‘고독’이다. 이민생활이 자유스럽지만 많은 한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고독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세탁기 수리에서부터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은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이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무제한의 자유는 진공속의 무중력이나 마찬가지며 ‘고독이라는 병’을 초래하여 자유의 의미를 퇴색시킬 가능성이 있다. 편한 것만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결혼을 왜 하는가의 대답은 등산을 왜 하는가의 대답과 비슷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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