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계 판사 더 나와야 한다

2000-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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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의 법정

▶ 마크 김 (LA카운티 수피리어법정 판사)

지난 2년간 판사로 봉직해 오면서 판사직이 어떤가 하는 질문을 자주 받아왔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판사로서 내가 겪은 경험은 한마디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판사들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판사는 백인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법조계 경력이 오래고 또 능력이 뛰어나다. LA카운티에는 대략 450명의 판사가 있고 커미셔너는 100명이 있다. 커미셔너는 판사에 의해 임명되는데 하는 일은 판사와 흡사하다. 단 하나의 차이는 커미셔너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의해 임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 전체로는 1,200여명의 판사가 있어 말하자면 캘리포니아주의 판사중 4분의1 정도가 LA 카운티에 있는 셈이다.

최연소 형사법원 판사로서 나는 독자들도 흥미가 있을 에피소드성 경험을 많이 했다. 우선 기억나는 게 판사에 임명된 후 처음 케이스를 할당받았을 때다. 법정으로 들어서니까 변호사들이 법원 서기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판사라고 말해 주니까 그들의 표정은 몹시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경험은 검사 시절에도 겪었다. 당시 자주 받은 질문은 혹시 서기 학생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흔히 육체적 특징에 근거해 내려지는 일반의 억측을 나는 능력을 통해 불식시켰다.

두번째 판사로서 나의 역할은 검사 시절의 역할과 전혀 다르다. 검사로서 내게 부여됐던 업무는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판사로서 현재 나에게 부여된 일은 모든 재판 당사자들이 공정하고 치우치지 않는 처우를 받게 하는 것이다. 모든 당사자들은 올바른 법의 판결을 기대하고 있고 또 당연히 그같은 판결을 받아야 한다. 이 점에서 나 스스로 항상 겸손한 처신이 필요하다. 또 잘못된 판결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사실도 항상 명심하고 있다.


셋째 올 1월부터 캘리포니아의 법원은 통합되었다. LA의 판사는 모두가 수퍼리어 법원 판사다. 나는 현재 형사재판을 다룬다. 나는 아직도 ‘각하’(Your Honor)라고 불리면 쑥스럽다. 그 호칭이 편안치 못하다. 이같은 판사에 대한 경칭은 우리의 사법 시스템의 고결성과 신뢰감을 상실할 때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넷째 나는 가끔 가다가 피의자들이 그들이 맞이한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스를 접하게 된다. 한 예로 상표도용으로 중범 유죄가 확정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한 한국인 여자 케이스를 들 수 있다. 이 여인은 집행유예 기간에 가족 여행차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 한국인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므로 중범죄 유죄확정 때문에 한번 출국하면 미국 재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 그녀는 이같은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출국을 포기했다. 어떤 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에 수반되는 결과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는 이 케이스뿐이 아니다. 이런 면에 유의, 미국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보다 폭넓게 이해하도록 한인 커뮤니티 차원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판사들이 커뮤니티 일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캘리포니아주 내 유일한 한국계 판사로서 나는 우리 커뮤니티에 대한 나의 책무와 헌신의 필요성을 십분 인식하고 있다. 나는 또 개인적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미국의 사법계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적 행사에 갈 때마다 나는 유일한 한국계 판사로 소개된다. 이것이 바뀌어야 한다. LA 일원에만 현재 20여 판사직이 공석이다. 이중 최소한 한 석이라도 데이비스 주지사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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