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년 똑같은 ‘축제’

2000-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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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하천식 (사회부 차장대우)

내가 한국의 날 축제를 매년 구경 가는 이유는 단지 취재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곳에는 미국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우리들의 정취가 있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보통 한인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있다. 장터에 설치된 부스들 사이를 걸어가다 어쩌다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반갑게 안부를 묻는 느낌도 싫지 않다. 놀이기구를 타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쳐다보면 ‘아들녀석도 데려올 것 그랬나’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주차가 힘들어 고생을 하고 온몸에 흙먼지가 앉아 집에 돌아가 꼭 샤워를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1년에 딱 한번뿐인 축제인 만큼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그러나 매년 그랬듯이 늘 아쉬움은 남는다. 무대와 장터 부스의 위치만이 바뀌었을 뿐 축제의 내용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개막식 때 수십장의 감사장이 오고가는 것도 그렇고 몇 년 전부터 봐왔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와 똑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비슷한 공연을 하는 모습도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 순대와 오뎅 몇접시를 시켜 먹었더니 몇십달러를 내라고 하는 업주의 얼굴을 쳐다보면 짜증이 나다 못해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주류사회 인사들이 오픈카를 타고 가면서 어깨가 빠지도록 손을 흔들어도 연도에 늘어선 한인들이 무표정한 반응을 보일 때는 측은함에 앞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축제재단 관계자는 이같은 아쉬움이 몇년째 누적돼 이제는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표현했다. 행사준비를 전문화하고 내용을 다양하게 꾸며 ‘축제를 위한 축제’가 아니라 ‘뭔가 보여 줄 수 있는 축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대는 21세기로 접어들고 있는데 우리의 축제는 아직 과거의 굴레에서 맴돌고 있다. 축제재단은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한데 만족하지 말고 사무국을 상설화해 연중 축제준비 체제를 갖춰야 한다. 한두달의 준비로 행사를 치르기에는 행사 규모가 너무 커졌고 한인들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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