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 올림픽 광장
▶ <빌 플래쉬키, LA타임스 칼럼>
25일 밤 캐시 프리먼의 여자 육상 400미터 우승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중 하나였다.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출신의 프리먼은 레이스가 끝난 뒤 트랙에 주저앉아 과거 그녀의 종족에 대해 말살정책을 폈던 호주 국민들이 보내는 갈채를 한몸에 받았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일어선 프리먼은 청,백,적색의 호주 국기와 황,흑,적색의 애보리진 깃발을 함께 묶어 흔들며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날 관중들이 그녀에게 보낸 기립박수는 아마도 스포츠 사상 가장 오랜 시간 계속됐을 것이 틀림없다.
경기 전에 마음의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프리먼은 사실 시드니가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부터 그리고 자신이 최종 성화주자로 선정된 사실을 알면서부터 고민에 빠졌었다. 호주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애보리진족은 지난 60년대까지도 백인들의 인종말살 정책으로 말미암아 갖은 고초를 겪어왔다. 애보리진족은 호주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사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호주 정부는 이를 거부해 왔다.
애보리진족은 프리먼에게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하도록 압력을 가해 왔기 때문에 프리먼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었다. 백인들 가운데는 프리먼이 지난 94년 영연방대회 때 우승한 뒤 애보리진 깃발을 들고 달렸던 점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그녀의 성화 최종주자 선정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그녀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던 프랑스의 마리-조세 페렉이 이번 대회에 불참함으로써 강력한 라이벌이 없었다는 점도 프리먼에게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지 않으면 안된다"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같은 중압감 때문에 프리먼은 지난 여름 LA로 피신을 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최선을 다한 끝에 승리를 따낸 것이다.
"결국 나 자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호주를 상징하는 초록색 육상 수트에 애보리진 깃발 색깔을 담은 신발을 신은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처한 현재의 위치가 잘 반영되는 듯했다. 50미터를 남기고 펼친 역전 질주는 그녀의 생에 있어서 가장 길고도 긴 순간이었을 것이다.
시상대에서 그녀는 호주 국가를 불렀다. 그것은 다만 한 차례의 경주였고 한번의 국가 애창이었다. 그로 인해서 복잡다단한 세계가 당장에 변할 리는 없다. 프리먼이 금메달을 땄다고 해도 대부분의 애보리진족이 속박돼 살고 있는 빈민가에서는 또다른 목숨이 헛되이 사라져가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적반하장격으로 원주민을 침략자 취급하듯 하는 백인 호주인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프리먼은 "가족들과 함께 우승을 축하하겠지만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와도 좋다"고 말했다. 프리먼의 경주는 영광의 승리로 기억될 경주가 아니라 희망에 찬 출발로 기억될 경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