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은 정신적 동물

2000-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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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2년 하버드대학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머릿속 연상작용이 우리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연구하는 실험이었다. 연구진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매일 몇분씩 오른손 검지에 힘을 줬다 뺐다하는 동작을 머릿속으로 하라는 숙제를 주었다. 단 절대로 손가락을 정말로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렇게 4주를 한후 검사해보니 손가락의 힘이 실험 이전보다 20% 정도 강해져있었다. 손가락 근육 자체가 변한건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이 힘을 강하게 만든 것일까. 손가락을 관장하는 뇌신경과 근육 사이를 연결하는 신경회로가 튼튼해져서 힘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었다.

실제 행동없이 머릿속으로 상상만해도 비슷한 효과가 난다는 이런 종류의 실험은 90년대 신경과학계의 인기 연구분야였다. 사람이란 존재가 실제상황 못지않게 정신의 영향을 받는 ‘정신적 동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경험하는 것이다. 끙끙앓던 사람이 애인과 함께 있으면 아픔을 잊어버리는 일 같은 것이 좋은 예다. 막연하게 믿어졌던 정신력의 힘이 이제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분야가 스포츠계다.


예를 들면 영국의 투창선수 스티브 백클리. 92년 바르셀로나에서 동메달, 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 이번 시드니에서도 은메달을 딴 백클리는 몇년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발목을 삐어서 걷지도 못할 때였다. 연습을 거를 수는 없던 그는 매일 마음의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다. 의자에 앉아 머릿속으로 동작의 세세한 부분까지 떠올리며 창던지기를 했다. 수천번 머릿속 연습을 하고 실제로 창을 던졌을 때 결과는 당시까지 그의 신기록이었다.

이번에 처음 올림픽 종목으로 추가된 여자 역도부문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미국선수 타라 노트도 정신력의 힘을 믿는 선수. 원래 체조선수였던 그는 역도선수라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체구가 작다. 5피트1인치에 105파운드.

그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역기 앞에 서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역기를 번쩍 가장 완벽하게 들어올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84년 LA올림픽때 금메달을 딴 미국여자농구의 당시 코치 팻 서밋은 승리의 비결이 ‘너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했다. 머릿속 연상작용이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돼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할 정도면 선수로서의 기량은 다 그만그만하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것은 정신력이라는 설이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미국올림픽 위원회가 98년 풀타임 스포츠 심리전문가를 한명 고용하더니 올해 그 숫자를 5명으로 늘린 것이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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