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I’m Forgetting

2000-09-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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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의견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유래없는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의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무너졌다. 헤픈 돈 씀씀이 때문이었다. 좀 잘나가던 시절 세계를 누비며 돈이 인격인줄 알고 썼다. 당시 세계 언론은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한국은 무시했다. 번영을 시기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97년 후반기에 한국에 몰아닥친 경제한파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를 IMF위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당시 위기에 대한 한국민의 대처능력은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금을 모아 국가를 살리겠다는 행렬을 보고 짧은 시간 안에 경제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서울의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던 자동차들이 운행을 자제하면서 도로의 흐름은 빨라졌고 서울의 공기가 깨끗해졌다고 신문이나 방송은 흥분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IMF 라는 말을 이용하여 사회상을 풍자하는 재치로 우울함을 달래기도 했다. I’m fool, I’m F., 또는 I’m fired 같이 자조적인 표현이 있는 반면 I’m fine, I’m fighting 같은 위기 극복의 자신감을 보이는 표현도 있었다. 이로부터 1년반 한국은 IMF 졸업을 선언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가 회복의 조짐을 보이면서 잠시 숨죽이고 있던 한국인의 졸부근성은 다시 머리를 들었다. 해외여행을 봇물 터진 듯 했으며 고급 룸살롱은 예약이 넘쳐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외국의 언론이 아직 한국은 경제위기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충고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며칠전 한국의 제2의 IMF를 경고하는 기사가 있었다.

한 외국의 언론이 한국인들이 IMF 라는 약자를 통하여 감정을 나타낸 재치를 이용, 충고를 하고 있다. I’m forgetting. 나는 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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