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폭력의 시작
▶ 김은애 <교육심리학 박사과정>
새벽 1시쯤인가 곤한 잠에서 깨어났다. 밖에서 한국말로 “오빠, 왜 그래?” “오빠, 왜 그래” 하며 계속 반복하며 묻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무엇인지 모르게 내 자신도 어둠의 공포감에 사로잡혀 잠을 다시 취할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고등학생쯤 되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길에서 서로 잡고 끌리고 하는 모습이 보였고 또 다른 남학생은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한 남학생은 여학생을 자기 차안에 데리고 가려고 손으로 강제로 끌고가려 하였고 여학생은 안 가려고 저항하자 다른 남학생한테 가서 무슨 협박을 하는 모양이었다. 여학생은 계속 “오빠, 왜 그래?” 하며 울음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학생이 자기 곁에서 떠나려고 하면 남자아이는 차안에 있는 물건들을 차 밖으로 내던지고 차를 마구 흔들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한 30분 동안 계속 서로들 실랑이를 벌이다가 얘기로 하자며 다른 남자아이가 어디로 데리고 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슨 공포영화를 보듯이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했다. 이들의 부모들은 도대체 자기 자녀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잠도 못 자고 자녀들이 집으로 들어올 때까지 지금 기다리고 있을까?
남자아이의 난폭한 행동, 그것에 저항 못하고 끌려 다니는 여자아이. 자기 자신을 자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만을 채우려고 자기보다 약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비겁한 남자아이. 그러나 여자아이는 자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합리화시키고 용서해 주고 다시 만날 것이다. 그런 관계를 계속해서 지속하면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얻는 것은 자기는 하찮은 존재이고 누가 자기를 때리고 이용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상담자가 기성세대의 가정폭력 문제를 상담할 때 듣고 보는 똑같은 시나리오다.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그 아이들이 언젠가 자신의 부모들을 보면서 기억에 담아두었던 행동, 익숙한 분위기, 당연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
물론 미디어의 영향도 있고, 세대의 변천 이유도 있겠지만, 그들의 행동양식과 방향과 가치관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나로서는 참으로 걱정이 더해간다.
부모들은 날마다의 생활에서 정신을 곤두세워야 한다. 부모들이 하고 있는 말투와 몸짓은 그대로 아이들의 몸에 배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향과 기분과 권리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인격 배양의 밑바닥에 정리되도록 아이를 키워야 하는 데 그렇지 않으면 내 기분, 내 이익, 내 의견만 고집하는 아이, 무례하면서도 그 사실마저도 모르는 아이, 언행이 거칠고 한심한 성인으로 자라날 것이다.
다시 밖은 조용해졌지만 내 마음은 어딘지 모르게 서글프고 착잡했다. 그리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그 아이들과 부모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