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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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과 눈물의 상관관계

2000-09-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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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권 문화에서는 눈물과 관련된 어휘가 특히 발달했다. 망국의 한에 우는 장사의 눈물, 소리 없이 떨어지는 규방여인의 눈물, 인생의 허무함을 새삼 깨달았을 때 주르르 쏟아지는 눈물, 또 사모의 눈물 등 갖가지 눈물이 옛 한시에서는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됐다.

한국인도 눈물에 관해서는 남 못지 않은 전통을 가졌다. 한국의 온갖 전승에는 대부분이 눈물이 배어 있다. 민담이 그렇고 민요가 그렇다. 전통문화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서는 눈물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메달리스트들은 영광의 순간, 예외 없이 눈물을 흘린다. 좀처럼 눈물 같은 것은 보일 것같지 않던 투기종목의 남자 선수도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다. 펜싱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딴 김영호 선수는 승리가 확정된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두손을 치켜들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혔다. 양궁 남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교문, 장용호, 김청태 선수들도 마찬가지. 응원 나온 여자 양궁선수들도 함께 울어 온통 눈물 바다가 됐다는 보도다.


영광의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러나 한국인의 전통만은 아닌 모양이다. 올해 올림픽의 경우 메달을 따는 선수들은 거의 예외 없이 눈물을 흘려 ‘역대 올림픽중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패배자들은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를 악무는 경향이다. 나이 어린 소녀들의 경우 예외는 있지만 메달을 놓고 경쟁하다가 승패가 결정됐을 때 눈물을 흘리는 쪽은 대부분이 승자라는 것이다.

또 거의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 선수인데 막상 금메달을 따고(이 때도 안 울었지만) 시상대에 오르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려 본인도 왜 울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어떤 선수는 결승전에 올라 시합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져 애를 먹기도 한다. 격정의 순간, 환희의 순간에 일어나는 정서적 폭발은 제 아무리 강철같은 의지의 인간이라도 주체할 수 없어 결국은 눈물로 표출되고 마는 법이다.

그건 그렇고 한국 선수들의 눈물이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과거 금메달을 딴 선수들의 울음은 오열에 가까웠다. 그 울음은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터지는 통곡 같았다. 이를 악문 그 숱한 인고의 나날들, 눈물겨운 가족(메달리스트 대부분이 어려운 가정출신이다)의 뒷바라지… 그리고 이제는 살만 하게 됐다는 안도감 등이 복합적으로 겹친 데서 터져 나온 감정의 응어리로 들렸다.

올해 메달리스트들의 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승리의 눈물이지 오열이 아니다. 또 1등, 금메달이 아니라도 당당한 모습이다. 훨씬 보기 좋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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