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2000-09-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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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 한국에서 스님들이 주먹질을 하면서 몸싸움하는 장면이 미국 주요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뉴스를 보고있던 아들이 “한국사람 성질 터졌다”며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몸싸움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마치 코미디 쇼를 볼 때처럼 낄낄 웃는 식구들이 얄밉기까지 하였지만 여느 때와 달리 참았다.

“한국사람 성질 터졌다”는 한국말은 우리집 남자들이 내가 화가 나있을때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면서 하는 말이다. 저희들끼리 “엄마는 매운 김치를 먹기 때문에 성질이 맵다”고 하면서 잘 참지 못하고 터트리는 엄마의 분노의 불똥이 자기들에게 튀어 올까봐 서로에게 경고하는 말이다.

화를 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열정적인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의를 보면서도 분노하지 않은 사람은 비겁하고 정의롭지 못한 아첨꾼이라고 할 것이다. 상황에 맞게 터트리는 분노는 필요하다. 단지 때와 장소에 따라 분노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감정지수가 지능지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연구가 있다. 1960년경에 스탠포드대학 심리학교수 미첼씨가 유치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마쉬멜로우 테스트’라고 불리는 충동컨트롤을 테스트하는 유명한 연구가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마쉬멜로우를 주면서 20분 후에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과자를 먹지 않고 있으면 한개 더 주겠다고 하였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어떤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즉시 먹었고, 어떤 아이들은 조금 참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은 먹었고,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았다. 과자를 한개 더 얻기 위하여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방법이 다양하였다고 한다. 과자를 눈에 보이지 않게 하려고 책가방 속에 감추는 아이, 주의를 딴데로 돌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눈을 가리고 있는 아이, 먹고싶은 충동을 절제하느라고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더라 한다.

연구의 대상인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12년 후 다시 인터뷰를 하였는데, 4살 때에 과자를 먹지 않았던 아이들과 먹었던 아이들의 차이는 여러 방면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한다. 과자를 먹지 않았던 아이들이 학교성적도 더 우수하였고, 과외활동도 활발하게 하였고, 사회성도 높았고, 선생으로부터 유망한 학생으로 칭찬받는 비율이 높았고, 친구들도 많았으며, 대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한다. 4살 적에 참았던 아이들과 참지 못한 아이들의 SAT 점수가 210점이나 차이가 났다고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결론이다.

한국 속담에 “세살 버릇 여들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다. 버릇이 사람의 인품을 만들고, 인품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이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것이 즉 감정지수를 높이는 정서교육이 영재교육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감정은 동기유발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동기유발은 성취를 추진하는 주춧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분노조절 카운슬러가 조언한 말이 기억난다. 화가 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한다. 우선 고도로 흥분된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화가 날 때, “내가 지금 화가 났다”하고 말하고 “왜 화가 났지”하면서 이유를 생각하여 보라 한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하여서는 산보를 간다거나, 심호흡을 하거나, 잠깐 자리를 뜨거나 하는 방법으로 우선 화를 진정시켜 이성을 되찾으라고 말한다. 결국 참으라는 소리이다.

“한국사람 성질”도 각자가 조금씩 참으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면 사그라지리라. 머리에 끈을 질끈 매고 데모를 하거나, 스님이 몸싸움을 하는 뉴스대신 올림픽 개막식에 남과 북이 나란히 손잡고 들어가는 뉴스를 식구들과 함께 보면서 통일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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