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청소년들이 중산층 거주지역인 풀러튼에서 총을 쏘며 패싸움을 벌여 부모들을 긴장시킨 지난주 한국에서는 한 소년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중학교 3학년의 남학생이 지하철역에서 77세의 노인을 발로 걷어찬 사건이었다.
발단은 지하철의 자리였다. 소년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자 노인이“요즘 애들은 눈치만 보고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한것이 화근이 되었다. 무안을 당했다 여긴 소년은 노인이 시청앞에서 내리자 뒤쫓아가 따졌고 이어‘욱하는 마음에’ 발길질을 한 것이 걷잡을수 없는 결과를 몰고왔다. 노인은 승강장 계단아래로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친 후 이틀만에 사망했고, 15살의 소년은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이 되었다.
예기치못한 사건 앞에서 어이없기는 피해자 가족이나 가해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손자뻘 소년에게 훈계 한번 했다가 목숨을 잃은 노인의 아들도, 10대의 아들이 졸지에 살인자가 된 소년의 아버지도 충격을 가누기 어려워했다. 부모나 담임선생의 말에 의하면 소년은 ‘별다른 말썽없던 보통 아이’였다.
신문에서 사건을 읽은 부모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요즘 아이들은 …”이었다. “요즘 아이들 겁나서 야단이나 치겠나” “요즘 아이들은 왜 그 모양이냐”“요즘 아이들은 저밖에 몰라서…”“요즘 아이들은 도무지 참을성이 없어”등등.
“요즘 아이들은…”이란 말은 아마도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말일 것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나일강 어귀 로제타에서 발견한 수천년전의 비석에도 “요즘 아이들은…”이란 걱정섞인 내용이 상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세대건 어른들의 걱정을 듣지 않고 자란 세대는 없다. 그렇지만 요즘의 “요즘 아이들은…”은 좀 더 심각한 것 같다.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자연’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성장환경이 인위적으로 바뀔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수 있는 지를 남아공의 동물학자들은 우연한 기회에 배웠다. 남아공은 70년대 후반부터 수년에 걸쳐 코끼리 이주작전을 폈다. 특정지역에 몰려있는 코끼리들을 전국의 공원에 고루 배치하고 일부 멸종위기의 종류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늙은 코끼리들은 없애고 어린 코끼리들만 추려 이주를 시켰는 데 그것이 중대한 과오였다는 사실은 10여년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아기 코끼리들이 청소년기가 되면서 걷잡을수 없이 난폭해져 코뿔소등 근처의 동물들을 마구 죽였다.
현장을 살핀 동물학자들은 코끼리들이 ‘어른’없이 고아로 자란 것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코끼리는 나이많은 수컷을 우두머리로 긴밀하게 무리를 이뤄 사는 사회적 동물이다. 어린 코끼리들은 위계질서 속에서‘어른’들을 본받으며 자라는데, 갑자기 낯선 환경에서 저희끼리 자라다보니 천둥벌거숭이들이 된 것이었다.
영국의 처칠수상은 ‘나라를 위해 가장 훌륭한 투자는 아이에게 우유를 많이 먹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우유’를 물질적 정신적 투자로 본다면 요즘 아이들은 우유를 많이 먹는 정도가 아니라 우유에 익사할 정도다. 장난감이든 사랑이든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주어져서 전혀 노력할 필요가 없는 이상한 환경에서 요즘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 동포로부터 재미있는 말을 배웠다. ‘보우빼이’와‘쇼어황띠’라는 말이다. 한국말로는 ‘보배’와 ‘소황제’이다. 중국에서는 70년대 초부터 엄격한 산아제한정책을 실시, 중국인의 경우 가구당 자녀 1명, 조선족의 경우는 2명으로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외동이를 키우다 보니 너무 소중해서 아이가 어려서는 ‘우리 보우빼이’라고 부르고, 크면 ‘쇼어황띠’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황제처럼 떠받들어 키우다 보니 아이들이 고집불통이고 이기적이고 버릇없고 참을성없고 자립심 없어서 부모들이 보통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가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고 질서를 익히는 훈련장소이다. 대가족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 성장에 가장 자연스런 환경이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약한 아랫사람을 돌보는 마음이 일상생활 속에서 익혀진다. 핵가족에 외동이, 혹은 남매로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어물어물 하다보면 공주병·왕자병 환자가 되고 만다. “요즘 아이들은…”의 1차적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