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책임한 HMO 주치의

2000-09-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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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O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매스컴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나왔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등 대통령 후보들도 선거공약으로 의료보험제도 개선을 내걸고 있을 정도다. 최근 위암으로 수술을 받은 이모씨의 케이스는 HMO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올해 회갑의 나이지만 평소 건강한 편이었던 이씨는 5개월 전부터 등부위가 아프고 식사를 못하는 등 신체에 이상을 느끼고 HMO 지정 주치의를 찾았다. 그러나 한인인 주치의는 "차도 마일리지가 10만마일이 넘으면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람도 그 나이가 되면 이곳저곳 시원찮은 구석이 생기는 법"이라며 단순 소화불량이니 참고 넘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씨가 참아봐도 계속되는 통증에 정밀검사를 해봐달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의사는 "보험회사에서 허가가 안 나온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참다 못한 이씨가 주치의를 바꿨으나 역시 한인인 새 주치의도 이씨가 원하는 내시경검사나 CT촬영 등을 해주려들지 않았다. 그 사이 밤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통증은 심해지고 몸무게도 무려 20파운드가 빠졌는데도 "소화불량이면 체중이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며 핀잔을 줬다. 지켜보던 이씨의 가족들이 강력한 항의를 제기한 끝에 정밀진찰 일정을 잡아놓고 기다리던 중 이씨가 내출혈로 쓰러졌다.


외과의사의 진단은 위와 십이지장 사이에 발생한 암이 악화돼 출혈을 일으켰다는 것. 이씨는 체내의 피가 60%가 빠져나간 상태에서 긴급 수혈을 받고 한고비는 넘겼으나 역시 한인 의사들로 이루어진 수술팀은 "이미 암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1년 이상 살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이들은 다른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고 싶다는 환자의 희망을 "위암증상이란 다 같은 법이다. 다른 의사의 소견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묵살했다.
이씨는 1년도 살기 어렵고 완치의 길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단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판단한 이씨의 가족은 보험플랜을 의사 선택에 융통성이 없는 HMO에서 PPO로 바꾸고 암전문 미국병원을 찾았다. 병원비 30%의 부담은 감수해야 했다. 미국병원 의료진의 진단은 "암이 심하게 번진 상태는 아니며 얼마든지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수술을 받고 위의 40%를 잘라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한때 삶을 포기하다시피했던 이씨는 희망을 되찾고 강한 삶의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씨의 가족은 처음 이상이 있어 찾아갔을 때 제대로 증상을 밝혀내지 못함으로써 암을 번지게 만들었던 의사들에게 분개하고 있다.
"더욱이 환자에게 투병의 의지를 키워주기 위한 희망적인 말을 들려주기는커녕 치료가 불가능하니 삶을 포기하라는 식으로 말을 했다는 사실은 묵과하기 힘듭니다"

이씨 가족은 다시는 그런 무책임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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