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갱을 보는 두가지 시각

2000-09-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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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청소년 갱범죄

▶ 이남수<형사전문 변호사>

지난 13일 새벽 풀러튼의 한인 밀집 고급주택가에서 갱단의 총격으로 10대 청소년 한명이 사망하고 한인을 포함한 세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풀러튼 경찰국은 관계된 여러 명이 아시안 갱멤버들이며 사건 장소는 피해자들의 거주 장소와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단순한 우발사고로 보지 않고 갱단과 관련된 싸움이나 보복성 총격 사건으로 수사를 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중요한 이슈를 고려하게 만든다. 첫째는 갱단의 존재이며 둘째는 청소년들이 과연 어떤 종류의 범죄를 짓고 있는지이다.

한인사회가 갱 문제를 접하기 시작한 것은 실제로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미국의 마약문제가 심각해지던 80년대에는 마약거래를 하며 총싸움이 나거나 마약 파는 구역을 차지하기 위한 패싸움들이 갱을 이루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실제로 1986년 LA 지역에는 블러드와 크립스라는 갱들이 파란색과 빨간색의 표시를 걸치고 다니며 싸우는 일이 많이 있었다.


이로 인해 현 시장후보이며 LA 시검사장으로 재임 중인 제임스 한은 86년 당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해서 플레이보이 크립스 멤버들간의 모임을 제지하였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플레이보이 크립스 멤버 청소년들은 길가에서 5분 이상 서 있을 수 없는 지역을 지정해 놓았을 뿐 아니라 이러한 청소년들은 비퍼를 소지할 수 없도록 하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동양계 갱조직은 위에서 언급한 단순한 마약거래만 하는 범죄단체가 아니었다. 특히 중국계 갱들은 중국타운내 업소들을 ‘보호’해 준다는 명분으로 매월 일정 액수를 착취해 갔으며 중국타운 업소들은 이들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경비원이 따로 필요 없다는 말까지도 해왔다.

그리고 동양인들은 얌전하다고만 생각하며 동양인들의 경제력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80년대 초까지 이들 중국갱들을 언론은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렌지 카운티의 월남타운내 싸움들이 잔인함을 점점 더해 가면서 동양인 갱들의 무서움이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경찰단속에 의해 갱단의 실체가 드러나고 갱단들의 세력이 점차 약해져서 이제는 과거의 막강해 보이던 갱단들이 아니라 작은 조직들로 나타나고 있다. 한인타운에서도 오래된 갱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파가 생기고 하는 일이 번번이 있다. 근래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처럼 단일민족이 단위가 되지 않는 다민족 갱단이 설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관련된 갱단 청소년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이번 사건 피해자의 친구들은 한사코 갱단의 사건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과연 경찰이 갱단이라고 한 것이 거짓말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갱단이 무엇인지 단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이 다르게 날 수 있다.

한국에서 적어도 중학교를 다닌 분들은 학교에서 클럽활동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한 단체를 만들어 재미있는 일을 즐기고 여행도 같이 한 적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만약 이러한 두 그룹이 놀러나갔다 시비가 벌어진다면 경찰에서는 분명히 갱단의 싸움이라고 단정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그저 청소년들이 모여 놀다 싸움이 난 것이겠지 하고 별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단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싸우다가 젊은 혈기에 총을 가져와 난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한국에서는 자라는 과정의 한 단계로 볼 수 있는 아이들간의 싸움이 갱단의 전쟁으로 오해받기가 쉬운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청소년 변론을 종종 맡아 하는 나는 황당한 경찰의 주장을 가끔씩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중학교 1~2학년 한국 아이들끼리 재미있는 이름을 만들어 서로의 소속감을 키워가며 10명도 안되는 자그마한 조직을 만들어 활동한다 했을 때, 아무런 말썽이 없으면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경찰의 눈에 자주 띈다거나 또는 우발적인 사고가 있으면 갱단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한국계 청소년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한인 학생끼리 모여 놀 때가 많이 있다. 만일 이런 경우에는 학교에다 부모가 인정하는 긍정적인 단체활동을 취지로 한다는 것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우발적인 사고가 났을 경우 갱단의 단원으로 오해받는 일이 없도록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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