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인생을 살자

2000-09-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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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균희

“남들은 잘 살아가는데 왜 저만 이런 병에 걸렸을까요?" “왜 우리 아이만 이런 못 쓸 병에 걸려서 고생해야 할까요?" 치료만 잘하면 회복될 수 있는 경우에도 이런 “남들은.. 그리고 나는 왜...?"라는 ‘억울 증후군’에 잘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왜? 왜?”에 대한 대답에 집착하는 이들에게 나는 대답해줄 말이 없다. “남들은 남들대로 또 고민이 있으니 남들 걱정 마시고, 치료만 잘하면 회복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치료에 중점을 두어 봅시다" 해보지만 신통치는 않다. “혹시나 어렸을 때 학교선생에게 매 맞은 충격으로 이런 병이 생겼을까요, 의붓아비에게 받은 학대로 그런 것은 아닐까요?" 하며 또 “왜? 왜?”를 연발한다.

‘왜’에 집착하다 보면 가장 쉬운 대답이 죄의 대가라든지, 마귀가 씌워서, 전생의 죄로 인하여, 아니면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의 결함으로 등등의 틀린 대답을 얻거나, 혹은 사회가 낳은 병이라던지, 스트레스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나의 문제를 남에게 전가시키는 계기가 된다. 억울한 심정에 사로잡히고 “남들은 그리고 나는" 하며 남을 질시하든지 나를 비하하기 쉽다.

‘"바보 같은 사랑’이란 미니시리즈 연속극에서 주인공이 술주정을 하며 “나는 공장에서 일해서 한달에 50만원씩 몇년간을 부어서 겨우 2천만원을 모았는데 누구는 증권을 해서 하루에 몇억씩을 번다니 이놈의 세상...."하며 푸념을 늘어놓은 장면이 나온다. 나의 삶보다는 남이 어찌 사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나의 성취와 만족보다는, 남이 나보다 못하고 불행한 것이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도구가 되는 인생은 그 자체가 불행한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사람에게서 행복은 멀어지게 마련이다. 남이냐 어찌 살던 하루에 억을 벌던 십억을 벌건 간에 상관치 말고 나는 뭘 어찌하며 살 것인지에 신경을 써보자.


“남은 이 나이에 대통령도 하는데, 남의 자식은 하버드엘 가는데, 남들은 처가 집에서 몇 십억씩 유산도 받는데…" 하며 남의 인생에 사로잡히는 이들에게 나는 권한다. “남의 인생을 살 생각일랑은 말고 자기자신의 인생을 사시지요" 남의 인생에 비교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단체끼리도 연장된다. 개인끼리는 질시와 모함, 단체로 연결되면 패거리 싸움이 일어난다. 비즈니스끼리는 과열경쟁을 해서 남도 나도 망하고 마는 결과가 온다. 음식점 옆에 음식점, 비디오집 옆에 또 다른 비디오가게와 세탁소 건너편에 세탁소를 세우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단체들의 모습도 다 “남들은…"하며 곁눈질하는 습관에서 오는 것 같다. 광고문구에도 “남의 가게는 비싸게 팔고 우리가게는 싸게 팝니다"하며 ‘남들은 그러나 우리는…’의 전략을 쓰는 것을 흔히 본다.

“한눈 팔지 말고 나의 앞길을 보며 살아가는 연습’을 권하는 것이 이런 ‘억울증후군’에 걸린 이들을 위한 치료지침이다. 짧은 인생, 실은 나의 생을 살기만도 바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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