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면허 운전자가 늘어난 이유

2000-09-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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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 of America

▶ <어거스틴 거자, LA타임스 기고>

사랑을 할 때나 정치를 할 때나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나중에 화가 가라앉은 다음 후회를 해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몇 년전 캘리포니아주 선량들 사이에 비합법 이민자들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무드가 조성됐다. 그래서 나중 후회할 일을 저질렀다.

주의회 의원들이 경기침체에 따른 대중들의 불만에 편승해 일자리를 찾아 이 곳에 온 불법이민자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조치를 지지했다. 바로 주민발의안 187이다. 94년에 나온 이 주민발의안은 비합법 이민자들이 정부혜택을 받는 길을 막았고 보건소를 찾는 그들의 엉덩이를 걷어찼으며 그들의 자녀를 학교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선조들이 만들었던 ‘견제와 균형의 원칙’ 덕분에 발의안이 담고 있던 헌법에 위배되는 조항들은 법원에 의해 뒤집어졌다. 라티노 유권자들의 반발을 염두에 둔 새 주지사가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문제가 된 조항들은 폐기 처분됐다.

그러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가 치유해야 할 상처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주민발의안 187이 통과되던 그 해, 새크라멘토에 의해 제정된 비합법이민자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이다. 이전까지 합법 거주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취득할 수 있었던 운전면허증을 소셜시큐리티 번호와 합법적 체류 신분임을 입증하는 사람만이 취득할 수 있게 바뀌었다.

이를 제안했던 사람들은 이 조치로 불법이민자의 유입과 무면허 운전자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같은 예상은 들어맞지 않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을 하기 위해 면허 없이 운전을 하는 것쯤은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멕시코와 비교할 때 버스나 지하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남가주에서는 무면허 운전이 갈수록 늘 수밖에 없다.

결국 캘리포니아주는 무면허 운전자를 양산해 내고 있다.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면 30일간 차를 압류 당하기 때문에 무면허 운전자들은 스모그를 내뿜는 싸구려 차를 사서 타고 다니다가 압류 당하면 버린다.

운전면허 시험도 안 치르고 교통규칙도 모르는 사람들이 등록 안된 차량을 보험도 없이 몰고 다닌다. 그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인가. 바로 캘리포니아 주민이다. 최근 발표된 ‘무면허 살인’이란 보고서에 인용된 통계에 따르면 무면허 운전자가 연루된 교통사고 사망 케이스는 캘리포니아주가 4번째로 많다.

LA 출신 초선 하원의원 길 세디요가 이같은 모순을 시정하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AB 1463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지난 2년 동안 의회 토의를 거치면서 처음 ‘94년 이전으로 환원’하자던 내용이 ‘합법 체류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도 운전면허를 발급’해 주는 것으로 다소 완화된 채 상하 양원을 통과, 주지사 서명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스 주지사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앞으로 10일 내에 주지사의 서명이 없으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세디요 의원 추산에 따르면 주지사가 새 법안에 서명하면 최소 100만명의 무면허 운전자가 면허를 취득하러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보험사, 노조, 자동차 딜러, LA지역 경찰연맹 등도 이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이민자에 강경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지지자가 적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민 노동력을 범법자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잔디를 깎는 일, 밥을 짓는 일, 아기를 보살피는 일에 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면 그들이 운전면허 없이 차를 몰고 우리의 집을 찾아오도록 만들 필요는 없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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