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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영웅’과 ‘국민의 망신’

2000-09-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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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88년 서울 올림픽 때의 일이다. 프레스센터내에 있는 본보 취재반 사무실에 터키기자가 찾아왔다. 좀 보자고 하더니 “특종 사진을 사지 않겠느냐”고 했다. 무슨 특종 사진이냐고 하니까 앞으로 터키팀에서 금메달이 나오는데 이 선수는 접촉하기도 힘들뿐더러 인터뷰도 할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 관한 스케치 사진을 카메라맨인 자기가 몇장 찍어 놓은 것이 있는데 한국일보에 팔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역도선수인 ‘술레이마놀루’라고 했다. 그러니 경기도 하기 전에 금메달리스트가 확실시된다며 사진을 팔려고 하는 매너가 마음에 안들어 “안 사겠다”고 정중히 거절해 돌려 보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술레이마놀루’는 갖가지 화제를 뿌리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매스컴은 그를 ‘작은 헤라클레스’로 불렀다. 더구나 술레이마놀루는 경기 다음날 터키수상이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귀국해 버려 스케치 사진을 기자들이 찍을 기회가 없었다. 부랴부랴 전에 찾아왔던 터키 기자를 만나 저자세로 사정한 끝에 술레이마놀루의 사진을 사는데 성공했다.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술레이마놀루는 앙카라에서 100만 시민이 운집한 환영인파에 묻혔으며 터키의 영웅이 되었다. 그후 그는 92년, 96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따 하늘이 내린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대저택에, 벤츠에, 보디가드와 하인까지 두고 사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술레이마놀루는 터키 국민의 우상이다.

바로 그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네 번째 금메달을 시도하다가 비참할 정도의 망신을 당한 것이다. TV 중계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꼈겠지만 술레이마놀루가 바벨을 들어 보지도 못하고 퇴장하는 장면은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아니, 저럴수가...” 모두 입이 벌어져 다물지를 못했다. 그의 실패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해프닝이다.

정치에서도 그렇지만 스포츠에서도 정상에 오른 뒤 어떻게 물러나느냐가 중요하다. 체코의 자토백도 ‘인간기관차’로 불리울 정도로 48년 런던 올림픽과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마라톤, 10,000m, 5,000m부문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그러나 멜번 올림픽에서 세 번째 금메달을 시도하다가 6위로 밀려나 이미지를 좀 구겼었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금메달리스트는 이디오피아의 아베베다. 그는 로마 올림픽과 동경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우승한 후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고 41세에 사망했다.

아마추어 스포츠맨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꿈을 가지지 못하면 목표를세울수가 없다. 꿈이야말로 메달리스트가 되는 첫째 조건이다. 그렌데 한번 금메달을 딴 후에는 꿈을 가진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정신도 해이해지고 자만심도 생겨 코치와도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두 번째 금메달 도전에 실패한 것도 목표설정이 희미해지는데서 오는 정신자세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가정을 살펴 보면 대부분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이번 양궁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미진양이다. 그의 어머니는 막벌이를 하고 아버지는 트럭운전사를 하느라 한번도 딸의 경기를 응원도 못해 봤다니 집안 형편이 짐작이 간다. 가정이 어려울수록 목표는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부자집 아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승마 분야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이유가 정신자세 때문이다.

네 번째의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다가 하루 아침에 국민의 영웅에서 국민의 망신으로 추락한 술레이마놀루의 욕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인가를 깨우쳐 주는 교훈이다. 그가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지만 않았더라면...터키의 영원한 영웅으로 남을수 있었을 것이다.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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