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호받을 문화와 버려야할 문화

2000-09-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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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과 보신탕

▶ 백향민<글렌데일>

또다시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이 세계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동물애호가들은 한국의 월드컵을 방해하겠다고 벼른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인은 분명 개를 식용으로 한다. 그러나 원래 한국인은 개를 식용으로 하는 민족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주장은 이렇다. 옛날 나라전역에 극심한 가뭄이 수년간 계속되었다. 먹을 것이라곤 남아 있지 않았다. 갓난아이를 삶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던 시절이다. 나라에서는 대책을 논의하다 개를 식용으로 하여 식량부족을 해결하는 방책을 채택했다. 사람들에게 개를 먹도록 하기 위하여 정력에 좋다거나 보양식품이라고 유혹했다. 그러나 고기가 맛이 없었다. 그래서 갖은 양념으로 맛을 돋구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국인은 개를 식용으로 한다. 한국인은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에 대한 비난에 음식문화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문화라고 모두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문화라도 이웃에 혐오감을 주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개를 식용으로 하지만 애완견은 먹지 않고 식용개가 따로 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식용견의 종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애완견의 주인이 자신이 기르는 개를 먹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애완견이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개들도 식용으로 한다. 그리고 식용견과 애완견과의 구분은 무엇인가?

세계는 점점 가까워져 이제는 모두가 이웃처럼 살아가는 세상이다. 사람을 식용으로 하는 식인종이 자신들의 음식문화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문화라고 보호될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도 남의 문화가 혐오감을 줄 때 그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시정을 요구할수도 있다.

그러면 한국인 자신들은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에 대해 떳떳함을 갖고 있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쇠고기나 돼지고기등의 육류처럼 당당하게 가정의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특별한 먹을거리로 한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여자들도 개고기를 먹는다지만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같은 음식이었다. 남들이 보는데서 떳떳이 먹지 못하고 산계곡 같은 곳에서 은밀히 먹는 그런 음식이었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도 위장되어 있다. 원래는 개고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보신탕으로 위장하더니 영양탕에서 사철탕으로 전혀 음식의 재료를 추측하기가 가능하지 않다.

물론 한국사람이라고 모두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개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오래전 서울에서 여러명이 어울려 가는데 따라가 본적이 있었는데 주인이 개다리를 들고 와서 가격을 흥정하는데서 식욕을 잃었다. 딱하다고 생각한 주인이 다른 식당에서 비빔밥을 시켜주었는데 그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미국인들은 개를 사랑한다. 개를 거의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죽을 때 자신의 재산을 개한테 남기는 유언을 하기도 한다. 늙어서 관절이상으로 걷지 못하는 개에게 수천달러를 들여가며 인조관절을 넣어주는 수술도 해 준다. 이런 것은 개를 식용으로 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기르던 개가 죽으면 장례식을 치러 주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개를 식용으로 한다는 것이 어찌 충격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은 음식문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동물애호가들의 조사처럼 한국만이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한국인의 개식용만이 더욱 문제가 되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처럼 극성스럽게 개를 먹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문제가 있다. 나는 오래전 한국에서 우연히 개를 죽이는 현장을 본 적이 있다. 개를 나무에 목매달고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장면이었다. 사람을 목을 매면 곧 숨이 넘어 간다는데 개는 그렇지 않았다. 한참을 처참하게 맞으면서 죽어갔다. 사람들에게는 살기라는 것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고기의 맛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가 동물을 살상해야 하는 필요는 있다. 그러나 어떻게 죽이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나는 동물애호가들이 숨어서 찍어 폭로한 사진들을 본 적이 있다. 조그만 스피츠종류의 애완견이 매달려 죽어있는 모습은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이 음식문화라고 하자. 그러나 남들이 그렇게 싫다고 하는 것을 고집하는 이유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개고기를 못 먹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라면 몰라도 어떤 사람은 주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재자가 민주화하라는 외국의 충고를 내정간섭이라고 거부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개고기를 못먹으면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들은 먹어야 한다. 그러나 때려 죽이지만은 말자. 이제 한국은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책임감도 갖고 체면도 갖는 준비를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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