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햇볓정책과 제2 위기설

2000-09-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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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문(文)을 숭상하면 풍성해지고 무(武)를 숭상하면 강해진다. 그러나 벌(閥)을 숭상하면 망한다." 이조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남긴 말이다.

’군벌’이 설친 나라치고 제대로 된 나라가 없다. ‘족벌’정치는 한 국가 사회를 고사시킨다. ‘문벌’이나 ‘학벌’만 중시되는 사회는 경쟁력이 없는 사회다. ‘재벌’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벌’(閥)자가 들어가 있어 별로 상서롭지 못하다. 6.25이후 최대 시련으로 불린 한국의 IMF위기도 따지고 보면 ‘재벌 망국론’에서 비롯됐다.

’벌을 숭상하면 망한다’는 말은 요즘말로 풀이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폐쇄적 조직 구조에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논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 논리라는 것은 배타적이고 권위주의적 논리이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로는 폐쇄되고 그 결과 그 조직은 생동력을 상실, 결국은 망하게 된다."


유신시절 한국의 문화재는 베이지색 일색으로 단장되기 일쑤 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하는 색이 베이지색. 그러므로 색깔에 관한한 다른 논리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사실 이는 ‘벌’(閥)을 숭상하는 한국에서 아직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는 물론 경제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를 지배해 온 현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듯 십다.

6.15선언이후 한국에서 모든 것에 우선하는 논리는 ‘햇볓논리’ 같다. 정부의 ‘넘버 1’ 정책순위는 남북문제다. 따라서 모든 행정력이 남북협력에만 집중되다보니 나머지는 모두 뒷전이다. DJ가 직접 챙기고 온 정치력을 발휘해 밀어붙치고 있는 정책이 남북화해정책이다. 또 향후 정권 재창출과도 무관하지 않으니만큼 적어도 집권세력 내부에서는 이견이란 있을 수가 없다.

조기 유학을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가 뒤집어도 그만이다. 남북화해 정책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외환 거래 자유화를 선언했다가 슬며시 철회해도 별 탈이 없다. 역시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인 햇볓정책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의료대란등 한국사회 전체가 갈등투성이지만 태평천국이다. 남북 화해만 되면 만사 해결된다는 식의 논리인 것 같다.

한국이 제2의 경제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일쇼크의 기준을 넘어선 유가상승, 반도체가격하락, 벤처기업의 잇단 도산, 지속되는 금융기관부실등외적, 내적 요인으로 한국경제가 멍들고 있다. 거기다가 대우자동차 문제가 터지고 주가대폭락 사태까지 겹치면서 ‘제2의 IMF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제2의 위기설’은 물론 아직까지는 ‘설’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주가 대폭락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심각하다. 주식시장은 사회전체 분위기에 민감히 반응하는 혈압계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독단의 논리는 때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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