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맞고 사는 여자가 더 잘못이다

2000-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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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가정연구원장>

가정폭력 방지에 대한 광고문이 TV 매체를 통해 매일 보도되고 있다. 가정폭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한국도 아닌 미국사회에서까지 배우자 폭행이라니… 그렇다면 가정폭력을 ‘가정의 문제’라고 묵인해 준 한국사회 통념이 태평양 건너, 이 사회에까지 흐르고 있다는 말인가…

얼마전의 전화 상담 노트의 기록을 소개한다. 아내 폭력으로 “재수 없게 상담 프로베이션에 걸려, 현재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는 중년 남자의 볼멘 소리… 그는 자존심을 구기는 상담과정을 어떤 방법으로든 빨리 끝맺는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몇 권의 책을 소개해 주고 계속 그 상담기관에서 상담 받는 길밖에 없다고 타일러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남자가 바른 상담과정을 거치지 않고 소위 한국식으로 해결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한인 남성에게 상담 프로베이션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내를 때리고도 반성은커녕 "재수가 없어서" 걸려들었다고 이 사회를 원망하는 남자에게는 상담 프로베이션이나 심지어 감옥살이도 교화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문화에 찌든 이런 남편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결혼증서를 마치 ‘아내 구타 자격증’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남성에게 개선의 여지가 있겠는가.

배우자 폭행이란 한번의 실수가 아니라 반복되는 습관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안이 없는가? 아니 있다. 구제불능이라고 생각되는 이런 한국 남성들은 제쳐두고, 새로운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역설적인 방안이다. 폭행을 당하면서 "이 시대에" "이 미국에서" 부부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들을 경각시키는 조금은 선동적인 아이디어다.

즉, -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폭행하는 남편은 경찰에 고발하라! -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이혼을 하라! - 자식도 버리고 집을 뛰쳐나오라! 필자의 이런 아이디어는 분명 놀랍고 역설적인 것이다. 그러나 폭력적인 남편의 기를 꺾기 위한 폭탄적인 제안일 뿐이다. 오직 배우자를 폭행하는 남성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그리고 기존의 전문 상담기관의 프로그램이 배우자 폭행을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의 마지막 제안이다.
물론 폭력적인 남성들로부터의 공격을 각오한 아이디어다. 특히 상담 프로베이션 따위의 부드러운 달램으로는 폭력을 휘두르는 한인 남성들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절망적인 절규라고 해도 좋다.

그러면 남편으로부터 매를 맞고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그 둥지를 탈출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이혼이다. - 자식 때문에 모질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또 있다. 이혼한들 내 팔자가 나아질 리 없다는 뿌리 깊은 숙명론이다. 그리고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먹고 살 수 있다는 세상을 모르는 바보 같은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 있다. 그렇게 많은 상담기관이 도와주겠다고 돈 들여 광고문까지 띄워 주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매를 맞고 있는 정말 속이 없는 여성들 때문이다. 아니 오랫동안 학대를 당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막힌 사연이 또 있다.
자기의 능력보다도 크게 무력하다고 느끼는 한국 여인들의 한의 속성 때문이다. 특히 ‘시집 귀신’ 되지 못하면 ‘떠돌이 귀신’ 된다는 친정 부모의 가르침을 겁내기 때문이다.
끝으로 역설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매 맞고 사는 여자가 때리는 남자보다 더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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