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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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비전 가진 사람들의 땅.

2000-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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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내 한국학의 위상.

▶ 손성옥

9월말 개학을 앞두고 있는 UCLA 캠퍼스에서 신입생들과 학부모들이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둘러보는 부모들의 애정과 걱정이 섞인 모습을 볼 때마다 대학에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헌신과 뒷바라지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 입학한 UCLA의 동양계 학생 비율은 37%, 버클리는 좀 더 높은 39%라고 한다. UCLA에 재학중인 한국계 학생들은 약 3,300명. 이들중 일년에 2,000명 정도가 한국학 관련 수업을 듣는다.

88년 UCLA에 부임하여 한국어 초급반을 강의했을 때 수강학생들 대부분이 유치원을 다니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계 학생들이었다. 미국 대학의 교실에 까만 머리가 이렇게 많이 모여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면서 서로들 신기해했다. 당시 한국어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겪은 문화 충격에 대해 스스럼없이 얘기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의 분포와 배경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우선 비한국계 학생들 비율이 해마다 많아져서 최근에는 전체 초급반 학생들중 3분의1 정도가 미국 학생들이다. 한국계 학생들의 경우도 거의 미국에서 태어난 2세거나 3세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미국내 한국이민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일어난 자연적인 현상이겠지만 해가 갈수록 2세들의 한국어 배경이 약해진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미국 내에서 한국학의 위상도 지난 10년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제 웬만한 미국대학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가 없을 정도이다. 지난 여름동안 두번의 한국어 학회를 주관하면서 미국에서의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8월 초 LA에서 열린 북미 한국어교수협회에는 아이비리그를 비롯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영어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교수 80여명이 다양한 주제로 토론에 참가했다. 북미 한국어교수협회가 해마다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열리는 것에 반해 8월 말 UCLA에서 주최한 한국어-영어 이중언어교사 웍샵은 미국 교육부에서 특별 지원한 행사였기 때문에 책임자로서 더욱 보람이 있었다.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미정부에서 100만달러가 넘는 프로젝트에 선뜻 지원을 하다니 시대가 많이 변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한국어 교육도 더 이상 한국 정부의 지원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미국 자체 내에서도 얼마든지 연구비를 따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번 웍샵에 참가했던 LA 통합교육구의 이중언어 교사들이 보여준 준비와 열성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하루 8시간씩 강행군의 강의가 일주일씩이나 계속되었지만 나른한 여름 오후에 조는 선생님이 단 한 분도 없을 만큼 진지한 태도였다. 이번 웍샵 동안 한국 역사, 사회, 언어, 문화뿐 아니라 장구와 서예 등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오후마다 캠퍼스에 장구소리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들으면서 한국의 위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대학 크레딧을 받을 수 있어 앞으로 승진에도 도움이 되고 교육현장에서 연수 내용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으니 교육 효과면에서도 탁월하다. 두 번의 행사를 주관하면서 받은 느낌은 미국의 주인은 아메리칸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고, 바로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축복 받은 땅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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