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캐시로 봉급달라"

2000-09-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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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로 주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독백을 연상케 하는 이 말은 요즘 타운의 한인 업주들이 앓고 있는 고민의 내용이다. 막노동할 종업원을 채용할라치면 "캐시로 봉급을 달라"는 것이 조건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크로 주겠다"고 하면 "쥐꼬리만한 봉급에 이것 떼고 저것 떼면 뭐가 남느냐"면서 일을 안하겠다고 거절하기 일쑤다. 코리아타운에 노동력의 수요는 많고 공급은 부족한 데서 오는 피고용자의 배짱 현상이다.

한인사회도 이민역사가 몇십년 되었기 때문에 막일 자리는 취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궂은 일에 박봉인 자리는 사람 구하기가 정말 힘든 현실이다. 그러니까 종업원 채용할 때 "캐시로 주겠는가"라고 큰소리치며 물어오면 가게 주인이 고민을 해야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직종은 식당의 접시닦이, 김치 아줌마, 웨이트리스, 리커스토어 헬퍼, 술집 종업원, 세탁소 헬퍼, 청소회사, 페인트 잡 등이다.


문제는 고용주쪽에서 캐시로 봉급을 주고 싶어도 나중 뒷탈이 날까봐 겁이 난다는 사실이다. 캐시로 주면 일할 때는 괜찮은데 "그만 두라"고 말할 때는 얼굴빛이 달라지며 "나도 생각이 있다"고 노동청 고발을 암시할 때는 후회막급해진다.

피고용인 쪽에서 캐시를 원하는 이유는 웰페어를 타고 있기 때문이 대부분이지만 메디칼 혜택을 계속 받기 위해 캐시 봉급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불법체류자나 영주권을 신청하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캐시를 원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리커스토어에서 캐시 베이스로 코리안을 채용했더니 몇달 후부터 계산대에 돈을 슬쩍슬쩍하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이 며칠을 벼르다가 돈 훔치는 현장을 잡아내자 종업원이 "지금까지 캐시로 봉급준 것 노동청에 고발하겠다"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게 주인 쪽에서 "제발 그만두어 달라"고 사정하다시피 해 겨우 내보냈다고 한다.

어느 세탁소의 경우는 지금도 말썽이 해결되지 않은 채 가게 주인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히스패닉 종업원이 캐시로 월급을 달라고 사정해 들어주었더니 몇 달 지난 후 "허리를 다쳤다"며 안 나왔다. 이어 "치료비를 달라"고 전화온 것을 무시했더니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고소장이 날아왔다. 치료비는 물론이고 몇 달 못 받은 봉급에 오버타임 수당까지 엄청나게 청구해 왔다. 오버타임을 한 적도 없는데 고용주쪽에서 근거서류를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게다가 캐시로 봉급을 주다보니 종업원 산재보험도 들지 않아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 세탁소 주인은 자신도 변호사를 사서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데 "가게를 팔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종업원 봉급은 체크로 주고 모든 일을 정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캐시로 주느냐 마느냐"-문제일 것도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가 제자리에 끼워질 수 없다는 것을 타운의 한인 업주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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