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당에도 들어오면 안돼요"

2000-09-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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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씁쓸했던 태고사 방문

▶ 곽제인 <라미라다>

며칠 전 노동절 연휴를 맞아 일요일 하루를 드라이브나 하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두어달 전 한국신문에 자랑스럽게 소개가 되었고 나의 친구 역시 다녀왔노라면서 자세한 약도를 보내주어 테하차피에 자리한 태고사를 찾기로 했다. 프리웨이를 내려보니 절에 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말뚝이 우리부부를 맞았다. 길을 따라 가며 꼭 필요한 장소에는 방향을 지시하는 말뚝이 산뜻한 모습으로 몇개나 더 있어서 쉽게 절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도중에 산책 중인 벽안의 무량스님으로부터 분명한 우리말로 그날 법당과 요사채는 잘 알려진 스님을 모시고 특별 수련회가 있어서 전부 내어 주고 있으니 들어갈 수는 없다는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차, 싶었지만 전화없이 나선 일을 반성하며 밖에서 둘러보고 가도 그만이다 싶었다.

1950년대 내가 다니던 여학교 근처 서울의 태고사를 기억한다. 거대한 기와 지붕과 지붕 끝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풍경 소리를. 그러나 이곳 미국 태고사의 지붕은 너무 가벼웠다. 역시 절에는 출입을 막는다는 뜻의 노란색 테이프가 서너 군데 둘러쳐 있었다. 정면의 계단과 기둥들과 단청이 채 안된 절의 모습을 살피며 법당 안의 신도들이 선정 삼매에 들었으려니 생각되어 발소리를 죽이며 우리 역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새 소리와 바람이 이는 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주변을 살피면서 스님의 뜨거운 불심을 느낄 수 있었고 공사의 흔적을 보면서 대단한 불사라는 생각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만 돌아가려고 나오는데 어느새 법당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두런거리는 말소리가 들리고 신도 몇분이 나와 거닐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이 아닌가 싶어 한 신도에게 다가서며 절 내부를 잠시 볼 수 있는가 물었다. 대답은 “안된다”였다. 그래서 돌아서려는데 한 여인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안심을 시키기 위해“안 들어가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는 곧이어 “마당에도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분명 노란색 테이프를 범한 적이 없는데. 그 산을 빠져 나와 근처의 깊은 계곡에서 나무 그늘 아래 차를 세우고 가져간 점심을 먹으며 서양 스님의 맑디맑은 얼굴을 예찬하며 달고 시원한 공기 덕분에 상쾌한 하루를 보내고 어둠에 잠긴 시내로 돌아왔다.

후에 그날의 사연을 전해들은 불교 신자인 친지 한분께서 불교는 그것이 큰 문제라고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앞으로도 태고사에 수련회는 계속 있을 터인데 방문객이 먼길을 가서 푸대접받지 않도록 나의 경험을 전한다. 절에 행사가 있는지 미리 전화로 알아보고 길을 떠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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