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는 가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명문이다. 교수진중 노벨상 수상자수만 16명으로 하버드와 시카고대를 제외하고는 미대학중 제일 많다.
버클리의 모체는 1853년 세워진 칼리지 오브 캘리포니아다. 학교 애칭도 이때 이름을 딴 ‘캘’(Cal)이다. 1868년 주정부 지원을 받아 유니버시티 오브 캘리포니아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1873년에는 처음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12명의 사도’로 불린 이들은 대학 총장, 가주 주지사, 연방하원의원, 은행장등 사회 요직에 진출하며 가주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
버클리는 또 미국내 어느 대학보다 먼저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한 학교다. 60년대에는 반전운동과 민권운동, 자유언론 운동 등을 통해 흑인등 소수계 권익 옹호에 앞장섰다. 명문대 최초의 아시안 총장이 나온 것도 여기다.
그러나 이제 버클리 캠퍼스에서 다양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학교 전체가 아시안 일색으로 뒤덮인 것이다. 90년대 초까지 30%대 수준이던 버클리의 아시안 신입생수는 올해 45%로 늘어났다. 백인도 30%로 완전 소수계며 라티노와 흑인은 9%와 4%로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다양성을 찾아 버클리에 왔더니 보이는 것이라곤 동양인뿐”이라는 게 아시안 신입생들의 반응이다.
이처럼 황색 물결이 버클리를 뒤덮고 있는 것은 96년 통과된 프로포지션 209 때문이다. 소수계에게 특혜를 주는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를 골자로 하는 주민발의안이 통과된 후 대법원까지 올라가 합헌 판결을 받으면서 입학 사정시 흑인이나 라티노라는 이유로 혜택을 줄 수 없게 되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어퍼머티브 액션 찬반 논쟁이 한창일 때 버클리대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성적만을 입학기준으로 삼을 때 아시안 수는 51~54%, 백인 34~37%, 히스패닉 3~6%, 흑인 1%가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대로 나가면 이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90년대 초 백인 30%, 라티노 15%, 흑인 6%였던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UC계열중 가장 많은 한인 학생이 다니고 있는 UCLA나 UC어바인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UC어바인의 한 한인교수는 “라티노와 흑인들의 모습을 캠퍼스에서 거의 볼 수 없으며 대학원이나 공대 쪽은 더 심하다”고 말했다.
실력만으로 신입생을 받아 흑인과 라티노가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 것을 놓고 아직도 찬반 양론이 들끓고 있지만 명문대 입학에 관한 한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의 최대 수혜자는 아시안임을 버클리대 신입생 인종분포는 분명히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