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자 장관 케이스의 미국식 해석

2000-09-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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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 홍<나라은행장>

한국의 신임 교육부장관이 취임하자 몇 주만에 사임을 했다. 사임을 한 이유가 자기가 사외 이사로 있던 삼성전자에서 실권주를 인수해서 거액의 돈을 챙겼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한국의 사정 당국이나 미디어들이 송자 장관에 관련된 사건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가 크게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적지 않게 놀랐다.

미국 증권감독국에서는 회사의 이사가 자기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는데 대해서 매우 엄격한 제약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회사의 이사는 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에 일반 주주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자기 회사와 거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사들은 외부 주주들이 모르는 회사의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주식을 매입했다가는 일반 주주들에게서 배임을 했다는 이유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특히 이사가 자기 회사의 주식으로 크게 돈을 벌었다고 한다면 우선 감독국의 조사를 즉각 받게 되어 있다. 한국의 증권 감독국은 이러한 사찰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근래 한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사외이사 제도는 미국의 제도를 본뜬 것으로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사외 이사들이 이사 본연의 책임을 망각하고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사직을 이용한다면 사외이사 제도는 유명무실하게 된다. 회사의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가 솔선수범하지 못하는 회사에서 경영진이나 직원들이 어떻게 정직하고 공정하게 일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대학 총장을 지낸 송자 장관 같은 지성인이 사외이사의 임무를 몰랐다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만일 미국에서 이러한 일이 생겼다면 일반 주주들이 내부자 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이사를 소송할 것은 물론이려니와 회사의 경영진에게도 배상책임을 물을 것이 틀림없다.


미국에 있는 우리 한인기업에는 은행을 빼놓고는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식회사가 아직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가 정착되려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하고 소유(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대기업이 주식회사가 되려면 많은 변화를 거쳐야 한다. 대주주가 경영실권을 쥐고 있으면 이사회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기업이 투명성을 가지기도 어렵게 된다. 한국의 재벌들이 그동안 자사 주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고 알고 있다. 이 재벌들이 내부자 거래를 해서 돈을 벌었다면 그 돈을 일반 주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송자 장관의 사건을 한 개인의 치부사건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 한국의 주식시장에서 부당하게 치부하고 있는 내부 거래자들을 도려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선량한 투자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한국증시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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