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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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어른들

2000-09-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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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구성훈 사회부 기자

최근 한인청소년회관(KYCC)이 주최한 기자회견을 취재하러 갔다가 무척 놀란 적이 있다. 이 단체는 약 한달간 한인청소년들의 주류 소비 및 LA 한인타운 주류판매 업소 실태에 대해 조사했는데 13~20세 한인청소년의 72%가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며 한인타운 내에 무려 340여개에 달하는 주류판매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좁은 타운 내에 술을 파는 업소가 이처럼 많은 것도 놀랄만한 일이지만 기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조사에 응한 한인청소년의 80% 이상이 한인타운에서 술을 구하기가 타지역에 비해 훨씬 쉽다고 대답한 사실이다.

타운업소를 내집처럼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면 익히 알겠지만 대부분 업소의 경우 나이가 어려 보이는 고객들이 와도 ID 체크를 생략한 채 그대로 술을 판매하고 있다. 기자도 한인타운 인근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타운에 있는 업소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솔직히 말해 한인식당이나 카페등 주류판매 업소 치고 앳돼 보이는 고객들의 ID를 체크하는 장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손님이 들어오면 나이는 아랑곳 않고 술을 많이 팔아 매상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유흥업소중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나이트클럽의 경우 문 앞에서 덩치 큰 시큐리티 요원들이 입장을 원하는 고객들의 ID를 체크하지만 ID 검사를 하는 시늉만 하기 일쑤다. 나이 어린 고객들이 "난 유학생이라 ID가 없다" "집이 가까워서 걸어왔는데 ID를 깜빡했다" "단골손님을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느냐" 등등 이런저런 변명을 둘러대면 업소측은 십중팔구 못 이기는 척하고 이들을 그냥 들여보내 준다.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파는 행위가 불법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타운에 주류판매 업소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 업소들이 청소년들을 제물 삼아 돈을 번다는 것이다. 술장사로 많은 돈을 버는 한인 업주들은 자신들의 아들 딸들이 타운 유흥가를 배회하며 술에 찌들어 사는 것을 과연 용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러 찾아올 때마다 내 아들딸의 얼굴을 한번쯤 떠올려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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