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의 정신은 무엇인가

2000-09-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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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봅시다

▶ 민상기<내과전문의>

200여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자유롭고 살아볼 만한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기에 몇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물결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을 이토록 빠르게 성장시킨 힘이 무엇이며 한국은 뒷걸음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케 된다. 미국에는 미국을 움직이는 정신이 있지만 한국에는 그런 정신이 실종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19세기말에 싹트고 20세기 전반에 꽃을 핀 특유의 프래그머티즘이 있다. 한국은 흔히 유교사상을 내세우나 그것은 중국의 것이며 그것도 맹자의 원유(原儒)가 아니라 주자학 이론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의 변질된 유학은 양반 사대부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였지 한국 민족에 힘이 되는 정신은 못되었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분명한 생각으로 현실적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행동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이해된다. 이런 사상은 찰스 피어스, 윌리엄 제임스, 존 듀이를 거치며 발전되었다.

미국은 애매모호한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재래 철학풍토에 빠져 허송세월 하기를 거부했다. 실제로 제임스는 독일관념론의 미국 상륙을 전염병 막듯이 막았다고 한다. 듀이는 미국교육의 방향을 교과서 중심의 교실로부터 사회공동체 삶의 현장으로 옮겨 놓았다. 형식적 대학 문화가 위선적 속물근성을 낳으나 직장의 동료의식이 민주주의와 연결된다는 듀이의 지적은 가슴에 와 닿는다.

한국은 대학교수의 만능시대다. 너도나도 대학교수임을 과시한다. 상식적인 내용의 말도 대학 교수의 입을 통해 나오고 신문 잡지 등에 실리는 제반 해결책을 대학 교수들이 쏟아낸다. 동네의 친절한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도 대학병원의 고자세적인 교수님들의 치료를 받아야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한국도 유교라면 원유에 가까운 ‘지행합일’의 양명학을 받아들여야 했다. 물론 우리에게도 한국적 프래그머티즘으로 실학운동이 있었으나 천주교 탄압과 맞물리는 과정에서 빛을 못 보게 됐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국의 사상적 진공상태에 일본이 식민지 근성을 심어 놓았고 해방 후에는 강대국들이 우리를 외세의 이념대결 희생물로 삼았다.

그러나 늦게나마 한국도 깨어났다. 자주적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평화적 공존노력은 우리 나름의 프래그머티즘의 인식이라 본다. 이념논쟁을 고집하다 전쟁이 나면 당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이제 우리는 실종됐던 한국사상을 찾아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더불어 살 줄 아는 마음씨를 깨우쳐 주는 원효사상, 사회정의를 위한 시민사회의 의지로서의 동학운동, 형식과 미신적 외세 종교가 아닌 생활 속의 원불교 사상 등이 한국정신의 알맹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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