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일 아닌 한국 의사파업

2000-09-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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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사파업 사태가 강건너 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한국 일은 결국 남의 일이 아니더군요”

의료계의 파업으로 한국이 장기적 의료 공백사태에 들어가면서 미주 한인들에게도 ‘불똥’이 날아들고 있다. 가볍게는 증상에 대한 문의 부탁부터 심하게는 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이 살다가 가장 불안해지는 것은 자신이 어떤 몹쓸 병에 걸린 것 같을 때이다. 그런데 증세는 심해지고 의사 얼굴은 볼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에 미국의 가족들에게 문의를 하는 한국사람들이 꽤 있다. LA의 주부 K씨는 며칠 전 서울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자고 나면 손등에 시퍼런 멍들이 생기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지 그 곳 의사들에게 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머니가 혈소판이 줄어들어 정밀검사를 받으려고 일정까지 잡았었어요. 그런데 검사하기 바로 며칠전 병원이 파업에 들어가 검사를 못 받았지요. 그런 상태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니 걱정이 될 수밖에요”

그는 자신의 주치의를 비롯해 평소 안면이 있는 여러 의사들에게 문의를 했는데 다행히 “한두달 치료 안 한다고 무슨 일이 날 중병은 아닌 것 같다”는 조언에 안심을 했다.

그런가 하면 50대 초반 직장여성 S씨는 2주전 한국으로부터 청천벽력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여름방학중 한국에 다녀온 아들로부터 “할머니가 정정하시더라”는 말을 들은지 불과 한달 후였다.

“어머니가 평소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한국에 가보니 사망원인은 감기였다. 노인이 감기에 걸리면 치명적일 수가 있는데 병원에서 받아주지를 않아 그대로 돌아가신 것으로 한국의 가족들은 설명했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 전화를 하니 병명을 묻더랍니다. 그래서 감기라고 했더니 “응급환자 외엔 못 받는다. 감기환자는 받을 수가 없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노인이 앓느라 아무 것도 못 드셨는데 링거주사라도 맞으며 치료를 받았으면 사셨을 걸… 너무 안타깝습니다”

진료를 마냥 늦출 수 없는 환자들은 아예 미국으로 건너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암환자들의 경우 병원에 가도 항암치료는 못 받고 진통제만 맞고 돌아온다고 하니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미국에 와서 치료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남가주 종합병원들에 한국서 온 환자들이 늘고 있고 한인의사 사무실에도 한국으로부터 심심찮게 문의전화가 걸려 온다고 한다. 의료개혁도 좋고 의사의 자존심도 좋지만 환자측 고통이 이만하면 이제 파업은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 아무리 정당한 투쟁이라도 국민의 원성을 사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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