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면 쓴 인종차별

2000-09-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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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ice of America

’인종차별은 옛날 일이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은 명백히 존재한다. 가면을 뒤집어 쓰고 옛날보다 교활해졌을 따름이다.

인종차별의 역사를 파헤쳐보면 오늘의 인종차별 실상을 이해하기 쉽다. 고대에는 인종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비인간적인 감정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고대 이디오피아인을 존경하고 낭만적으로 대했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세상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자기네와 겉모습이 다른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처우한 일은 없었다.

인종의 개념은 유럽에서 근대 과학과 기술이 싹트기 시작한 1800년대 전반과 중반에 걸쳐 생겨났다. 당시 유럽 과학자들, 특히 생물학자·식물학자들은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다양성을 규명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그과정에 민족중심주의와 문화적 쇼비니즘이 작용한 결과 유럽인을 사다리의 맨위에 올려놓고 아프리카인을 바닥에 깔아놓는 인종간의 위계가 생겨난 것이다.


노예제도를 도입했던 아메리카대륙에서는 수백만 아프리칸 노예에 대한 학대를 정당화 시킬 필요성이 있었는데 여기에 과거 회교도들이 동아프리카에서 노예시장 개척에 써먹었던 인종주의 만큼 적합한 논리는 없었다.

미국의 인종차별은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노력으로 인해 독특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그같은 노력은 오히려 노예제도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초래했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의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인종차별은 가면을 쓰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상징적 인종차별, 현대적 인종차별, 회피성 인종차별이라고 일컫는다. 가면쓴 차별은 백인우월·흑인열등이라는 과거의 순진했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인류평등의 이상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평등의 이상은 백인들의 특권 독점을 선호하는 사회현상과는 상반되는 모순을 보인다.

그래서 혐오성 인종차별은 백인의 특권을 없애려는 프로그램과 정책에 반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흑인에게 우대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사회심리학적 연구결과 나타난바에 따르면 회피성 인종차별주의자는 자기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인종차별은 대부분 무의식적인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실과 실제상황을 망라해 실시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회심리학자들은 무의식적 인종차별이나 회피성 인종차별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같은 기피성 인종차별의 영향은 아프리카 흑인과 미국 흑인의 삶의 질에 물질적,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아프리카 흑인과 미국흑인사회내 높은 HIV/AIDS 발병률속에서 인종차별이 가져다준 피해를 목격할 수 있다. 아프리카 흑인과 미국흑인 사회에서 영아 사망률이 높고 고혈압,심장병,암과 폭력등 방지가능한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는 점도 바로 이같은 인종차별의 증거다.

오늘날 인종차별의 영향은 미국내 백인과 흑인사이 경제적 갭이 점점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비록 고소득층 및 중산층 흑인의 비율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빈곤선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흑인 어린이의 비율도 또한 높아졌다. 오늘날 미국의 기업, 정부 및 군사조직에서 고위층에 올라있는 흑인의 숫자는 인종차별없는 평등한 사회에서라면 있게될 숫자의 10분의1에도 못미치는 비율이다.

이같은 구조화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오늘날 인종차별이 없어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현실에서 도피해 숨어있을 수만은 없다. 그런다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인종차별을 하는 행위를 배척하는 사회적, 제도적 규범과 가치관을 개발하고 보급시켜야만 진정한 평등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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