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치 페이

2000-09-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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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이 본 한국

▶ 크리스 포오먼 (샌프란시스코주립대 교수)

한국사람으로부터 처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후한 인심이다. 특히 식당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돈을 내겠다고 싸우다시피 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인 광경이었는데 이러한 한국문화가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료 영어선생의 초청으로 다방에 갔는데, 찻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하여 다음에는 내 차례라고 하며 커피를 마셨다. 다음날 그 친구와 다방에 다시 갔는데 내 차례로 정해진 약속을 깨뜨리고 자기가 내겠다고 하면서 돈을 냈다. 그 후에도 내가 찻값을 내려고 하면 번번이 그 친구는 손을 내저으면서 자기가 내겠다고 하여 어리둥절하였다. 그 친구의 친절이 혼돈이 되었다.

나중에 한국문화 워크샵에서 한국식 에티켓을 배우면서 한국사람이 돈을 내기 위해서 서로 다투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워크샵 강사가 "예의"를 시범으로 보이면서 가르쳤다. 세번 이상 거절하는 것이 예의라 하였다. 식탁에 앉을 때 "내가 낼 테니 많이 잡수세요." 라고 말하라 하였다. 그러면 상대방이 "내가 낼게요." 하고 우길 것이라고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지갑을 꺼내면서 "내가 낸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캐시어 앞에 와서 돈을 캐시어 에게 먼저 주는 사람이 돈을 내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워크샵에서 정보를 얻은 후 빚을 갚기 위해 친구에게 식당에 가자고 초청하였다. 워크샵에서 배운 대로 실험을 하였더니 효과가 있어 밥값을 낼 수 있었지만,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세번씩 내가 낸다고 말하면서 연출하는 것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풍습을 알고난 후 나는 식당에 갈 적마다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하나하고 유심히 관찰하곤 하였다. 서로 돈을 낸다고 우기는 것은 보통인데 어떨 때는 서로 돈을 내겠다고 주먹질을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미국에서 아는 사람 사이에 밥값을 내준다고 억지를 쓴다면 오히려 실례가 된다. 직장에서 동료끼리 식당에 가면 영수증을 개별적으로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영수증을 받아 자기가 시킨 음식값을 계산하여 함께 나누어서 내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 것은 자기가 내는 것을 ‘going dutch’ 또는 ‘dutch pay’ 라고 한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에게는 ‘going dutch’는 자연스럽다. 개인적이고 독립심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불편을 끼치지 않고, 아무도 나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going dutch’가 오히려 당연하다. 분명한 이유가 없이 그룹 중에서 누구 한사람이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자청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을 하게된다. "이 사람이 무슨 부탁을 하려나?" 하는 오해도 있을 수 있다.

이중문화 속에 사는 사람은 양쪽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여야 하기 때문에 융통성이 필요하다. 내게는 ‘going dutch’가 자연스럽지만 한국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한국식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dutch pay’가 한국사람에게는 실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의 쪽 가족이 모였을 때는 ‘going dutch’로 한다. 내 생일에 동생이 나의 여섯 형제들의 가족들을 식당으로 초청하였다. 식사가 끝난 후 각자가 자기 식구들의 음식값을 내고, 동생이 우리식구들의 음식값을 내어 주었다. 생일의 주인공이라고. 다른 형제들의 생일 때도 한 형제가 생일 주인공의 스폰서가 되어 생일 파티를 계획하고 ‘dutch pay’를 하며 대가족이 모여 즐긴다.

그러나 아내식구들은 한국식이다. 식당에 가면, 수십 명의 밥값을 아내 형제들은 서로 내겠다고 다툰다. 한국식 풍습이기에 나는 입다물고 서로 다투는 그들을 보면서 과연 누가 돈을 내는 특권을 따낼까 하면서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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