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관계 두가지 시각

2000-09-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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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건을 바라보는 데에는 상반되는 두가지 시각이 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이 그 하나다. 일종의 필연론이다. 다른 하나는 음모론적 시각이다. 이 시각은 드러난 현상의 이면에는 숨겨진 스토리가 반드시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혹은 발표된 그대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식으로 일단은 분석하려 든다. 남북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더 그런 경우가 많다. 비밀의 장막에 꽁꽁 둘러싸인 게 북한이다. 거기다가 남북한간의 사전 접촉은 공개리에 추진하기 곤란한 사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글쎄요, 그다지 획기적인 느낌은 안 듭니다." "김용순 북한 노동당 비서 서울 방문이나, 남북 올림픽 동시입장이나 그게 그것 같아요." 해방후, 그러니까 사상 처음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입장이 결정됐다는 보도에 대한 일부 LA 한인들의 반응이다. 정상회담도 했는데 남북한이 올림픽에 동시에 입장하는 게 뭐 대수냐는 표정이다.


남북문제는 참 묘한 구석이 있다. ‘춘향전’ 스토리를 훤히 꿰고 있는 관객이지만 이몽룡이 어사또로 출도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갈채가 터진다. 분단상황의 한국인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박수를 칠 준비가 돼 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남과 북이 잘 해보자는 일에 비판을 가하면 자칫 반민족, 반통일론자로 몰리기 쉽다.

이런 면에서 남북문제는 아주 조심스럽고 또 그만큼 상황에 따라서는 ‘음모적 입장’에서 일이 추진되기도 쉽다는 지적이다. 이 시각에서 바라보면 이번 남북한 올림픽 동시입장 결정 과정에도 미심쩍어 보이는 구석이 없는 게 아니다.

타결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회담이 극적으로 반전된 게 ‘북한의 실세’로 알려진 장웅 국제올림픽위원이 시드니를 방문한 후부터다. 그리고 지난 10일 올림픽 남북한 동시입장 타결이 발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한 선수단 규모, 깃발등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원칙’만 타결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나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미 남북한 선수단 복장 공수작업에 들어갔다는 구체적 보도까지 나와 남북한 동시 입장은 이미 훨씬 전에 결정된 사항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같이 남북한이 사전에 합의는 해놓고 ‘모종의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발표 타이밍과 무대 설정을 위해 고심해 온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은 ‘사실 오래 전에 결정된 사실’이라는 북한의 장웅 IOC위원 발언으로 더 짙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남북한간의 결정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든 그 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므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겠고, 어찌됐든 올림픽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전 세계에 과시한다는 점에서 굿 뉴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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