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하)

2000-08-2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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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 사이에도, 옛날 사람들처럼 흔하지는 않지만, 간혹 어떻게 해서 푼돈이나 만지게 되면 첩부터 거느릴 생각이나 하는 한심한 부류가 있다.

애첩에게 상냥해지는 도수와 반비례하여 본처에게는 수모와 학대가 막심해진다. 자식교육과 살림살이에 시간이 모자라는 아내가 얼굴 단장이나 하며 앉아 있을 시간이 날 턱이 없다. 아무리 고운 얼굴도 꾸미지 않으면 다소 못난 사람의 꾸민 얼굴보다 못한 법이다. 거기에다 애들 뒤치다꺼리는 그 자체가 반 전쟁이다. 전쟁터에서 화장할 마음이 생길 리가 없다. 결혼 전에는 미녀로 소문났던 사람도 이쯤 되면 별 수 없게 된다. 짙게 화장한 여인은 의심을 일게 하고 두 번 다시 보지 않게 된다.

설혹 비첩과 통정의 짧은 쾌감이 자신에게는 적은 것이 아니라고 치더라도 가족 전체의 복지가 파손되고, 특히 아내에게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고도 그 자신 진정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마약이나 도박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얻는 찰나적 흥분이 자신의 장래를 담보로 하고도 남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장 로맨스와 사회악 중독이 동반하게 마련인 불안과 갈등으로 가득 찬 인생이라면 충만한 삶이라고 말할 수 없다. 비겁한 자기도취와 자기 부정을 반복해야하는 생활에서 행복이 끼어 들 틈이 없다. 그래서 행복론 이론가들은 행복한 생활이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살아온 경험으로 보더라도 육감주의자들의 행복개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육감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불행을 인간의 조건으로 가정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의 기본 조건은 자기 기만 없는 순수한 만족과 사회의 전통적인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때에만 충족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케케묵은 주장일까?

육감적인 행복의 특성이 단순하고 직접 와 닿는데 있다고 한다면 영감적인 행복은 복잡하며 자신에 대한 긍정적 판단, 즉 자아 만족의 질적 도달을 의미하는 셈이다. 영감적 행복을 높이 여기는 사람들은 항상 행복에 도덕률을 개입시키며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인격 수양을 진정한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육감주의자들이 행복을 외적요소 --고급 차, 사치스런 생활, 심지어는 약물(마약) --에서 찾는다면 영감주의자들은 외적요소의 허무함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은 마음의 평화임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한 삶이 곧 행복이라고 믿고 실천한다. 호화 요정을 출입하고 고급 차나 값비싼 요트를 소유하려고 애쓸게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서 심플한 인생의 진미를 음미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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