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장실과 비즈니스

2000-08-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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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주 (수필가)

얼마전 딸아이가 자기 동네에 새 일본 국수집이 생겼다며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집이었다. 입구부터 모양새가 단정했고, 식당 안은 좁았지만 인테리어가 여간 깔끔하지 않았다.

음식은 한 사람씩 쟁반에 날라다 주는데, 국수를 종류에 따라 담는 솜씨며 그 서비스가 예사롭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먹어보니 맛은 그저 그랬다. 한국 음식점처럼 밑반찬이 따라나오지 않는 국수집에서 심플한 소스에 먹는 국수를 아무려면 한국 음식에 비교할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그 집의 소박한 분위기에 가격도 괜찮은 편이니까 좋아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식당에서 파는 국수가 훨씬 맛있다.

‘샤브샤브’라는 음식만 해도 그렇다. 이스트 빌리지 10가인가에 유명한 샤브샤브집이 있다. 일본 식당답게 서빙은 유난히 멋스러웠지만 맛은 그게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단무지도 따로 사먹어야 하니 대단히 비싼 샤브샤브가 되었다. 맛이 특별하게 좋았다면 그런 억울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딸이 모처럼 초대한 점심은 인색한 음식 때문에 먹은 것 같지도 않았고, 손해본 느낌 뿐이었다. 그런데 아쉬웠던 마음이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확 뒤집어졌다. 식당 안은 테이블도 몇 개 안될 정도로 좁더니 화장실은 식당의 1/4은 될 정도로 그 안이 넓었다. 게다가 식당 인테리어는 극히 심플하고 소박했지만, 화장실은 마치 귀족의 리빙 룸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한 쪽에 놓인 골동 가구는 대단히 정교한 솜씨의 값진 설합장이었고, 그 위에 잘 기른 분재가 도자기 화분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한 옆엔 멋스런 바구니에 담긴 피치색의 페이퍼 타월이 장식품처럼 소담했다.

손을 닦는 싱크대는 창가에 있었는데, 그 창에도 빨간 꽃이 핀 화분이 귀엽게 놓여 있었다. 싱크대의 수도꼭지는 값비싼 도자기 제품이었으며, 그 위의 거울을 비추고 있는 등은 나무로 만든 수제품이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묻어나는 화장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부족한 음식맛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사람의 기분을 편안하고 기분좋게 해주었다.

고작 일본 식당의 화장실을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가 하니, 나는 그것이 바로 장사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음식 맛은 고사하고라도 화장실이 좋아서 이 집을 더 자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호에도 화장실 때문에 잘 나가는 카페가 있다. 그 집 화장실은 벽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데,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재미있는가. 언젠가 터키에 갔을 때도 식당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크고 넓은 화장실 안에 터키 민속의상을 입힌 실물 크기의 갖가지 사람 인형들과 화려한 꽃들로 장식해서 그것만으로도 큰 구경거리였다. 화장실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두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나오는 것만 봐도 그 식당은 성공한 식당이 틀림없었다.

흔히 화장실이 그 나라 문화의 척도라고 한다. 우리 뉴욕의 한국 식당들 중에서 화장실에 투자하는 식당이 몇 군데나 될까. 식당 안은 번쩍거리게 크게 해놓고, 화장실은 문을 여닫기도 불편한 식당이 하나 둘이 아니다. 거기에다 청결 상태까지 꼬집자면 골이 아플 지경이다.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쏟아버려도 형식적인 사과만으로 얼버무린다든지, 미군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확실하게 혼내줄 수 없는 한미행정협정(SOFA) 등, 자존심 상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솟구치는 분노에 앞서 내 가슴을 미어 터지게 하는 일은 이런 우리 모습에서부터 비롯되는 열등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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