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드니 올림픽과 N세대

2000-08-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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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에세이

▶ 손영우 스포츠 레저부장

살다보면 콧등이 시큰해질 정도로 감격스러울 때가 몇번있는데 내게는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하여 왜군을 쳐부수는 국어교과서를 읽었을 때, 박정희대통령시절 지용주선수가 올림픽복싱에서 동메달을 따고, 양정모가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왔을 때가 그랬다.

메달 따온 올림픽선수는 지프를 타고 국민적 환영속에 시가행진을 하고 대통령도 만났다. 대서특필된 지용주선수기사를 읽고 흐뭇해하는 어른들을 보고 큰 잔치나 난 듯이 덩달아 괜히 신이 나고, 나도 커서 올림픽 나가서 메달을 따오는 선수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올림픽은 큰 감격이었다.

그런데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올림픽에 나가면 메달감인 유명한 선수들이 올림픽대표자리를 줄줄이 퇴짜놓고 있는 것이다. LA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가 "결혼해야 한다"며 미올림픽 농구 드림팀 제의를 거절했을 때 의아해 했는데 요며칠사이 올림픽 빠지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됐다. ‘스위스의 요정’ 마티나 힝기스가 US오픈테니스뒤에 "다시 올림픽 하드코트에서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말로 올림픽불참에 물꼬를 트더니, 미모로 한몫하는 러시아의 애나 쿠니코바는 "스케줄이 안맞는다"며 간단히 딱지를 놨다. 러시아 정부로부터 배은망덕하다는 호된 질타를 받았지만 "올림픽? 흥. 난 따로 놀래"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나이가 좀 든 선수들도 10대들을 따라 슬그머니 올림픽에서 꼬리를 뺀다. 그랜드슬램대회 최다우승에 빛나는 테니스황제 피트 샘프라스는 며칠전 "올림픽에 안나간다"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부상이니 하는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았다. 농구 드림팀의 팀 던컨(샌안토니오 스퍼스 포워드)도 불참을 통보했고, 유고산 용병 블라디 디바치(새크라멘토 킹스 센터)는 "올림픽 훈련기간이 너무 길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유고대표팀의 제의를 거절했다. 조국 유고를 위해 88년과 96년에도 뛴 디바치지만 이번에는 변했다. 돈많고 유명한 프로스타들은 이젠 올림픽 정도는 콧방귀를 뀌어야 주가가 더 높아지는가 보다.

세태가 참 많이 바뀌었다. 영광스런 올림픽의 무대가 어느새 허명뿐인 귀챦은 행사로 전락해 버렸나. 올림픽위원장 사마란치가 88년 서울올림픽에서 프로들의 올림픽 참가를 허용할 때부터 이런 사태가 우려된 바 없지 않았지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때만 해도 자기주장이 세기로 소문난 농구황제 마이클 조단 마저도 국민적 압력에 못이겨 올림픽에 나갔다. ‘항상 세계최고’라고 생각했던 미올림픽농구팀이 88년 올림픽에서 지자 경악한 미국민은 드림팀 구성을 촉구했고 여론에 등떠밀린 조단은 선봉장을 맡아 금메달을 가져왔었으나 시드니에서는 달라진 사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많은 프로스포츠 스타들이 금메달이나 국가, 명예와 같은 거창한 것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편리를 스스럼없이 공개적으로 선택을 한다. 최고급 호텔에서 지내던 선수들이 선수촌에서 결코 화려하지 않은 숙박을 해야 하는 것도 싫고 후원사 로고도 못붙이고 상금도 안생기는 올림픽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NBC방송이 올림픽 선수를 영웅으로 뛰워줘고 국민들이 환호를 보내도 귀챦다. 올림픽때야 말로 국민적 자부심과 일체감을 최고로 고양시킬수 있는 호기인데 선수들이 콧방귀를 뀌니 나라 운영도 해 먹기 어렵게 됐다.

피곤하고 생기는 것 없는데 왜 올림픽에 나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N세대(net generation)들의 전형적인 사고를 본다. ‘심플한 사고’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좋은데 정이 안가고 걱정이 앞서는 것은 기성세대의 진부한 생각 때문인가. 아무리 개인의 창조적인 생각과 개성이 값어치를 갖는 디지털시대지만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만들어낼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리가 올림픽에서 보고싶은 것은 싸구려들의 실리가 아니다. 왜소한 인간의 한계를 최선을 다해 한치라도 넓히려 시도하는 큰 인간상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72년 뮌헨 올림픽의 영웅 마크 스피츠. 수영7관왕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던 스피츠는 평범한 의사로 생활하는 지금까지도 감동을 준다. 같은 의사라도 올림피언이지 않은가. 생업을 충실히 하면서 운동도 잘하는 큰 인간옆에 서면 운동하나로 실리만 밝히는 섣부른 프로들은 더욱 가벼워 보인다. 인간드라마가 피어나는 전통적인 감동의 무대 올림픽을 싸구려 프로들이 훼손할 수는 없다.

모래와 진흙이 고루 섞인 찰흙에서 꽃도 쑥쑥 피어난다. 사회는 없고 개인만 있는 모래알 같은 사회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한국사회처럼 개인과 개인이 너무 밀착돼 개성이 버티기 힘든 진흙땅 사회도 발전이 어렵지만 굴절된 디지털 모래알 사회도 희망이 없다. 모래와 진흙이 고루 섞여야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도 더욱 큰다.

N세대 스타들의 잇단 올림픽 불참발표가 이어질 때 "이번에도 미올림픽 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오겠다"고 당당히 밝힌 아틀랜타올림픽 여자테니스챔피언 린지 데븐포트가 같은 또래들보다 더 큰 인간으로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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