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미무드와 코리언 아메리컨

2000-08-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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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 철 <주필>

최근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다녀온 P씨의 속터지는 경험담이다.

수원갈비가 유명하다길래 수원까지 가족들이 내려가 대중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이들이 영어로 떠들며 장난을 쳤던 모양이다. 옆자리에서 소주판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인듯한 남자가 “아니, 누가 왕년에 영어 못해 봤나! 여기가 어디라고 미국말로 떠들고 있어. 미국놈들 한번 혼내 줘야 해. 미국놈 행세하는 놈들도 마찬가지야”라고 고함지르더라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도 한국말을 약간 알아 듣기 때문에 자기들 욕하는 것을 눈치채고 “저 사람들 왜 미국놈 미국놈 하면서 소리치지?”라고 P씨에게 물어 본 모양이다. P씨는 쇼크를 받고 식사를 중지한채 밖으로 나와 버렸는데 생각할수록 불쾌해진다며 “이것도 반미무드와 관련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자녀들에게 모국을 보여 주려고 별러서 가족이 한국에 나갔었는데 마음에 상처만 받고 왔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P씨가 겪은 해프닝은 반미무드와는 관련 없는 것 같다. 교포들이 한국 나가 영어 하면 사람들이 싫어 한다. 그래서 재미동포가 한국에서 취직하거나 사업을 할라 치면 주변에서 제일 먼저 하는 충고가 “영어 쓰지 마시요”다. 이런 이야기들을 했더니 P씨는 “그럼 왜 한국에서는 자기 자식들을 초등학교에서부터 영어과외를 시키며 법석을 떱니까. 미국에 영어 연수 오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미국을 동경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자기 모순입니다”라고 코멘트했다. 자기는 영어 잘 하고 싶고 남이 영어로 지껄이는 것은 듣기 싫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요즘 반미감정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각의에서 “미국의 정책이 잘못된 것은 비판해야 되지만 그것이 반미로 연결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것은 한국의 반미감정이 가볍게 넘길 단계는 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DJ는 지난 6.25 전쟁 기념식에서도 “미국과 미군의 공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전방부대 시찰 때는 “미국은 우리에게 과거에도 중요했고, 현재도 중요하며, 미래에도 중요하다”고 못박았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반미감정에 대해 발언을 한 것이 벌써 열번째다. 이것도 이상하다.

미국은 한국에서 일고 있는 일부 단체들의 반미운동이 현 DJ정부의 묵인하에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명성 발언을 하는 모양이다. 특히 남북회담 이후 미국은 한국 정부에 대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당신들 우리 제쳐 놓고 북한과 무슨 비밀 얘기 했지?” 이런 눈치다.

한국이 지금 반미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분명히 그건 아니다. 매향리 미군 사격장에서 데모가 일어난 것도 그 지역이 지난 30년 동안 미군 사격장 때문에 땅값이 엉망이 된데 대한 주민들의 항의지 반미감정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일부 반미 운동에 대해 미국이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는 사실이다. 미국무부는 한국을 여행하는 미국시민은 현지 대사관과 사전에 의논할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이는 좀 오버액션이다.

미국인들은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지만 안되겠다 싶으면 ‘막가파’식으로 가는 별난 기질이 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반미운동에 대해 미국이 오판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문제다.

한미관계가 악화되면 미국에 살고 있는 이라크, 이란인들이 겪었던 것처럼 코리언-아메리칸의 입장이 미묘해질 것이다. 누구 편에 서야 할까. 시집온 며느리의 고민이나 비슷해진다. 친정이냐, 시집이냐의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때 코리언-아메리칸의 자세는 당연히 미국을 선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시민권 선서를 어기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2세들 앞날을 생각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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