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SUV 수난시대

2000-07-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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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구성훈기자

최근 들어 개스값이 급등하면서 일반 승용차보다 덩치가 크고 개스를 많이 먹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소유하고 있는 한인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차체가 튼튼하고 ‘터프’해 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SUV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개스값이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자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불구하고 SUV 붐에 휩쓸려 무리를 해서 SUV를 구입했던 한인들이 서둘러 SUV를 처분하고 다시 승용차를 모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신문·잡지등 언론사들도 SUV 운전자들을 성토하는 내용의 글을 앞다퉈 싣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치솟는 개스값 때문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SUV 소유자들의 감정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권위 있는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지 최근호 ‘나의 주장’(My Turn) 페이지에 실린 한 미국인 독자의 기고문 내용은 대충 이렇다. "개스를 엄청 먹고 배기량도 높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SUV를 왜 몰고 다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SUV가 승용차보다 과연 승차감이 뛰어난가. 그것도 아니다. 또 한가지 웃긴 것은 프리웨이에서도, 로컬 도로에서도 SUV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그 큰 차를 혼자 몰고 다닌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SUV에 탑승한 경우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주차장엘 가도 비좁은 공간에 덩치 큰 SUV들이 꽉 들어차 있어 차를 주차하기가 힘들다. 개스값이 오르기 전에는 비싼 SUV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무척 부러웠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도요타 캠리를 모는데 승용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만족하며 행복하기까지 하다"

SUV 팬들이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한동안 포드 엑스페디션을 몰다가 개스값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헐레벌떡 차를 팔아치우고 다시 승용차 운전자로 컴백한 한인 김모(LA 거주·36)씨는 "SUV를 몰면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개스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은 SUV는 영 아닌 것 같습니다. 엑스페디션만 하더라도 30갤런짜리 탱크에 개스를 풀로 채우는데 50달러가 넘게 듭니다. 44갤런짜리 탱크를 가진 엑스커션의 경우 75~80달러가 들지요. 승용차로 갈아치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고 안도했다. 개스값이 현 수준을 유지하는 한 SUV 수난시대는 당분간 계속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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