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김정치 끝나면 지역주의 끝난다

2000-07-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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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석

▶ 한나라당 이부영 총재 인터뷰

김대중 대통령 임기 끝나면 JP도 자동 용도폐기
남북대화는 모든 계층 망라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나라당의 이부영 부총재는 한국의 대학 교수들에 의해 21세기 정치지도자 1위에 뽑힌 적 있는 촉망받는 차세대 주자중 한 사람이다.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갖고 있는 그는 한나라당내 일부 극우세력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에도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오는 31일 필라델피아에서 시작되는 미공화당 전당대회 참관 길에 LA에 들른 이부총재를 만나 그의 통일관과 정치 포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부총재는 한국 정계에서 대표적인 진보성향 정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이부총재가 몸담고 있는 한나라당은 보수에 뿌리를 둔 정당이다. 당내에 극우로 비쳐지는 인물도 많거니와 이회창 총재 역시 보수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보수정당 속에서 몇 안되는 진보파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지금의 세태에서는 지난날 냉전시대 때처럼 스펙트럼을 진보나 보수로 나눌 수는 없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보수, 진보의 구획을 짓는다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됐다. 지난날 보수극우와 진보의 투쟁은 죽고 죽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상호보완적이고 누가 앞서고 뒤서느냐는 문제로 바뀌었다. 사생결단을 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집권 민주당도 내부 사정은 비슷하다. 진보, 보수가 섞여 있는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다. 대신 지역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민주당은 호남, 한나라당은 영남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국사회 최대의 진보는 지역주의의 극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우선 DJ, JP, YS등 소위 3김이 현실정치에서 손을 떼는 시기가 우리가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때라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DJ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가 될 것이다. ‘JP가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DJ 임기가 끝나면 JP는 자동적으로 용도 폐기될 것이다. 3김이 물러나면 그 뒤를 이어 지역주의의 유훈통치를 기대하는 정치인들이 있겠지만 그들은 카리스마 면에서 3김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이어가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이부총재가 한나라당과 함께 하면서 참신성을 잃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수경향마저 띠게 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나는 과거 김대중 총재가 아무런 이유 없이 통합 민주당을 깨버린 것을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또 자기를 쫓아가지 않는 정치인은 변절자, 낡은 정치인으로 매도했다. 바로 그렇게 김대중 일파가 퍼뜨린 왜곡비방이 이렇게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과연 배반자냐" "왜 멀쩡한 정당을 쪼개고 때만 되면 정당 제조기처럼 정당을 만드느냐" … 현역 대통령을 더 이상 비방하고 싶지는 않다. 그 당시 야당을 쪼개는 과정에서 이철, 박계동, 유인태, 제정구 등 정치인들이 희생됐다.

나, 이부영이 하나만 살아 남았다. 자기의 정치적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국민적 신망을 받던 정치인들을 희생시켰다.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하나 남은 이부영이마저 희생시키고, 매도해서 김대통령에게 뭐가 좋겠는가. 이부영이가 사라지는 것이 한국 정치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있어서 이회창 총재는 "북한에 쌀을 원조해 주면 군사력을 키워 남침을 할 것이다"는 정도의 19세기 사고방식에 매달려 있다고 비난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통일문제에 대한 당론은 있는가. 이부영 부총재의 통일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과거 김일성 주석 사망시 조문사절을 보내자고 했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북을 방문, 동갑내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한나라당 안에도 나와 생각이 다른 극우 반공주의자가 있고 북한에도 적화통일을 부르짖는 강경론자도 있다. 통일 논의는 비록 걸음이 더뎌질지라도 그들을 포함해 모든 계층을 망라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당론은 아니고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통일이 5단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신뢰구축의 단계다. 이산가족 재회, 경제교류, 문화·예술·체육분야 등에서의 교류가 이뤄지는 함께 공존하는 단계다. 둘째, 냉전시대의 유물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해제하는 단계다. 남쪽의 보안법을 개정하고 북한의 노동당 규약을 고치고 비무장 지대의 병력을 후퇴시키는 것이다. 셋째는 군축의 단계다. 개정됐던 보안법은 이 단계에서 완전 폐지한다. 넷째 단계는 2국가 2체제에서 1국가 2체제로의 전환이다. 외교권은 남북한 양쪽 대표가 모인 기구에서 갖고 남북한 정부가 각각 지방자치정부 역할을 하는 단계다. 마지막 다섯 번째가 1국가 1체제의 단계다.

거기까지 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낙관한다. 앞으로 통일이 이뤄지면 한국이 지금까지 주변국가에 의해 평화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동아시아에 평화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스위스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제주도에 국제기구를 유치한다. 외국군은 평화유지군의 역할로 상징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본다.

-차기 대통령 선거구도는 어떻게 짜여질 것이라고 보는가.

▲지금 당장은 민주당에 누가 후보가 될지 떠오르지 않은 상태다.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일찌감치 후보로 떠올라 있다. 그러나 앞으로 2년반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이총재는 이미 한번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일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2년반 동안 검증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부총재 자신은 차기 대선 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차차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인가.

▲앞에서 한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2년반의 검증기간은 상당히 긴 시간이다.

-국회법 개정문제로 왜 그렇게 난리를 쳤는가. 이회창 총재가 양해를 해준 사항이라는 설도 있는데 말이다.

▲비단 자민련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의석수 10석으로 하향 조정해 주면 다음 선거에서 TK세력 일부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다. 그같은 우려를 사전 봉쇄하자는 뜻이다.

-내각제나 4년 중임제 개헌에 대한 의견은.

▲개인적으로 4년 중임제를 찬성한다. 5년 단임제를 하니까 국회의원 선거에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이 겹쳐 혼란스럽다. 거의 매년 선거를 치르는 셈이 된다. 미국도 4년 중임제에 2년에 한번씩 중간선거를 통해 평가를 받는다. 또한 대통령 임기가 한번밖에 없으니까 처음부터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통령제를 택할 바에야 4년 중임제가 좋다고 생각한다. 내각제는 우리 여건상 아직 맞지 않는다고 본다. 남북 관계 협상에 있어서도 대통령제가 유리할 것이다. 내각제를 실시하면 지역주의가 구조화 될 가능성이 높다. 지역 세력간에 연합을 함으로써 정권을 잡는 일도 생길 것이다. 고로 내각제는 어느 정도 남북 관계가 진전이 되고 지역주의가 타파된 다음에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한국 정치 전망은 어떻게 보는가.

▲낙관한다. 3김 정치가 끝나면 지역주의가 끝나고 그러면서 당의 정책노선에 따라 정치적 지형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이부총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 정치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 역사에서 분단시대는 삼국시대 이후 지금이 처음이다. 이 시대 정치인으로서 분단해소와 평화통일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지금 어떤 입장에 처해 있던 분단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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