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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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LA 방문.

2000-07-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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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온 편지.

▶ 최은선<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아파트>

나는 6월14일부터 7월9일까지 LA에 다녀온 40대 후반의 여성이다. LA에는 언니의 큰아들과 나의 아들아이가 공부를 하고 있다. 칠순을 넘긴 친정 어머니께서 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자들을 너무나 보고 싶어해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갔던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어머니, 언니와 셋이 간 여행이기도 해 기대와 설렘으로 들떴는데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 있었다. 언니가 갑자기 입술, 얼굴에 물집이 생기고 잔뜩 부어 한 한인 피부과 의사를 찾아갔다. 미국에선 의당하는 절차겠지만 환자보기 전에 지불방식이 보험이냐 크레딧카드냐 현금이냐를 자세하게 물었다. 우리야 당연히 현금일 수밖에 없었다.

주사 한대 놔주고 며칠치 약 지어줄테니 200달러를 달라고 했다. 환자와의 흥정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23만원정도. 서울에선 이 정도면 웬만한 수술비 반값에 해당된다. 그러니 놀랄수 밖에. 조금만 깎아달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어렵냐”는 의사의 물음에 “어렵다”고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재벌 아닌 다음에야 미국대학에 자식 유학보내며 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과 “깎아달라”소리가 딱 맞아 떨어졌는지 그때부터 막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려우시면 LA에 있는 무료 보건소에 가시죠. 거기가면 흑인들이 많이 줄서 있어 더운데 한참 기다려야 될거예요. 여기는 서울로 치면 장충동 같이 잘 사는 동네예요. 접촉성 피부염같은데 그 증세요, 가짜 귀걸이, 가짜 반지, 가짜 시계 같은거 차면 생기기도 해요.”

그리고도 모자라다 싶었는지 의사는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이건 로렉스지만”이라고 했다. 의외의 상황에서 의외의 말을 듣고 너무 놀라 진료를 포기하고 나와 버렸다. 피부염 치료받으러 간거지 우리가 어디 진짜 로렉스시계 구경하러 간것인가.

그리고는 예정보다 일찍 귀국했다. 한국에서 치료받기 위해서였다. 동네 피부과에 가니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호르몬 균형이 깨지며 생기는 피부염이라고 했다. 하루 진료와 약값이 3200원. 미국돈으로 3달러 정도. 한국서는 보험이 없는 일반환자도 하루 1만원 조금 넘으면 된다. 그래도 의사들 아주 잘 산다.

한 사람 행동보고 너무 싸잡아 비난하진 말아야 한다는 것 잘 안다. 좋은 의사가 더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새겨들어야 할 것같다.
“이모가 병원에 가서 황당한 일 당했다니까 내 친구들이 들어보지도 않고 ‘한인의사한테 갔었지?’ 그러던데요”

한국의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들 얘기다. 내용은 달라도 불쾌한 경험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또 다른 이들의 이런 경험들이 모여 아들아이 말처럼 같은 한인끼리는 더욱 외면하게 될까봐 일부러 글을 보낸다. 아주 작은 것 하나부터라도 함께 생각하고 고쳐나가는 것, 그것이 희망을 키워나가는 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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