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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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대통령 신화’ 탄생하려나

2000-07-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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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세철 (논설의원)

"둘 다 유명 인사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Celebrity와 Famous는 이렇게 구별해 설명될 수 있다. 그 명성이 헛된 것이든 어떻든간에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면 ‘설레브리티’다. 남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고 또 실제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해 그 이름이 알려지고 인정된 사람에게는 Famous란 말이 적합하다." 한 역사학자가 내린 정의다.

전 미국민에게 우상이 되다 시피한 이름이 ‘케네디’다. 이같은 ‘케네디 신화’와 관련해 이는 다름아닌 미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설레브리티 강박증세’의 한 현상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케네디 예찬론자들은 케네디 신화는 그저 형성된 게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케네디 집안이 미국사회에 끼친 공로가 신화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존 F 케네디 대통령등 케네디가의 2세들은 이미 미국사회의 전설이 돼있다. 거기다가 3세들도 사회 곳곳에서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이 마약이다, 섹스다 문제를 일으킨 것도 사실이지만 케네디 집안의 이상주의를 버리지 않고 공익을 위해 헌신함으로써 ‘Celebrity’라기 보다는 ‘Famous’로 불릴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명문 집안의 역사는 대체로 몰락의 역사가 되기 쉽다’- 이 말대로 3, 4대 이상 계속해 명문으로서 가문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케네디가를 제외한 미국의 전통적 명문, 루즈벨트, 록펠러가 등의 명성이 오늘날 거의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지 W 부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할아버지는 상원의원, 아버지는 대통령을 지낸 부시 집안의 장남이다. 조지 W는 줄곧 아버지가 간 길을 뒤따랐다. 아버지가 다녔던 앤도버와 예일을 거쳤고 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텍사스의 석유 업계에 투신했다. 결과는 그러나 아버지의 경우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아버지는 학창시절 뛰어난 성적에 스포츠 스타로 각광을 받았다. 아들 조지 W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한마디로 시원찮은 성취도를 보였다.

학교 졸업후 아버지와 아들은 더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 부시는 40세 전에 사업에 성공했고, 이후 공직자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반면 아들 조지 W의 석유사업은 부채만 잔득 걸머지게 된다. 거기다가 학창시절부터의 음주벽은 날로 심해져 알콜중독자란 비난까지 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조지 W 부시 생애의 전반부 스토리다.

여기서 끝났으면 부시 집안 이야기는 ‘잘난 아버지에 불초자식’의 진부한 스토리로 그치게 된다. 스토리는 그러나 새로 시작된다. 그 시점은 1986년 7월28일. 꼭 14년전이다. 이후 조지 W의 움직임은 새 방향으로 큰 궤적을 이루며 뻗어나간다. ‘케네디 신화’에 못지 않은 ‘부시 신화’ 탄생을 향한 궤적인지도 모른다.

"1986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지 W 자신도 이 해를 자신의 생애가 결정적 변화를 겪은 해로 보고 있다. 이 해는 조지 W가 하나님을 발견했고 동시에 새로운 장래를 발견한 해다."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다. 40세되는 생일인 이해 7월28일 조지 W는 단주를 공개리에 맹세했다. 이후 1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단 한방울도 마시지 않음으로써 맹세를 지켰다. 그리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빚더미의 석유사업을 청산, 프로 야구 업계에 뛰어 들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실패만 거듭하던 조지 W의 변신이 시작됐다. 사업에 성공했다. 이후 공직사회에 진출, 텍사스 주지사를 연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년여간 지도자로서 험준한 공개적 검증절차인 장거리 예선 레이스를 거쳐 조지 W 부시는 마침내 부동의 공화당 대권주자가 됐다.

오는 31일부터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다. 전당대회의 주연 배우는 말할 것도 없이 조지 W 부시다. 명문가의 ‘미운 오리새끼’같은 존재였던 조지 W는 전당대회에서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아버지 존 애덤스와 아들 존 Q 애덤스 대통령’이후 두 세기만에 아버지와 아들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는 대기록 수립을 향한 비상이다. 아마도 조지 W의 날개짓을 누구보다 숨죽여 바라보는 사람은 아버지 조지 부시일지 모른다. 한때 기대를 저버렸다가 돌아온 아들이 바로 조지 W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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