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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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연애감정

2000-07-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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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설가 박완서씨의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는 60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50대의 사랑만 되어도‘풋풋한’이란 표현은 대개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60대는 육정이 다 사그라지고 연애감정이 오래 전에 떠나버렸을 것으로 여겨지는 나이. 그래서 그 빈터와 같은 마음에 사랑의 감정이 등장하면 오히려 10대 같은 풋스러움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최소한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여성이 고속버스에서 한 노신사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연히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면서 두사람은 대화를 나누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녀처럼 들떠서 재잘거리고 깔깔대는 자신을 발견하고 60살의 여성은 스스로 놀란다. 까맣게 잊고 있던 여성성이 되살아난 것이다.

정신과 의사들 말을 들으면 노인일수록 사랑이 필요하고 특히 이성간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한다. 60대, 70대의 연애감정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간혹 한인사회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좀 당황스럽다. “요즘 노인들은 젊은층 뺨친다”- 이성관계가 리버럴하다는 말이다. 얼마전 6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노인 친목회원들과 관광을 다녀온 후 ‘놀랐다’고 했다.


“나는 혼자 사니까 친구와 같이 갔지만 다른 분들은 쌍쌍이 왔어요. 당연히 부부간인줄 알았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대부분이 이성친구 사이였어요”

최근 한국에서 이슈가 된 ‘황혼이혼’은 미주한인사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처럼 재판에 올려지고 여성계가 요란스럽게 이슈화하는 일이 없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오렌지카운티 가정법률상담소를 예로 들면 3개월 단위로 보통 100여 케이스를 상담하는 데 첫마디가‘이혼해야겠다’로 시작되는 케이스가 절반, 그중에서 50대이상의 황혼이혼에 해당되는 연령층은 5%정도 된다.

“대개는 젊어서부터 쌓여온 앙금이 원인이지요. 평생 참고 살았지만 이제 남은 여생은 마음 편히 살고 싶다고들 하십니다”

아울러 점점 늘어나는 노부부의 갈등원인은 배우자의 이성문제이다. 대부분 웰페어를 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어 자유롭게 여행다니고, 회식이 잦고, 노인아파트에 모여 사는 생활환경이 이성간의 친목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때로 가정불화의 원인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사회적 관습이나 체면에 저당 잡히지 않고 육체와 감정을 가진 건강한 인간으로 보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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