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먹는 데만 가면…

2000-07-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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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한인타운의 한 뷔페식당. 결혼식 하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식당이 장터처럼 붐볐다. 혼잡하기는 해도 결혼식이라는 경사에 동참했던 친지들로서 그만한 불편은 못 견딜 것도 없었다. 단 “조금씩만 체면을 차려주었다면…”- 그 자리에 있던 20대 청년이 단서를 붙였다. 그는 친구와 함께 막 식사를 하려던 중 다른 그룹이 와서 합석을 했다.

“그 일행중 아이들 두명이 자리가 없어서 못 앉은 게 문제였습니다. 옆의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아직 안 드셨어요?’하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아직 식사중”이라고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옆의 아이에게 말을 했다.“너 옆에 잠깐 서서 기다려라”

“아이가 접시를 들고 옆에서 기다리는데 정말 부담스럽더군요. 뷔페식당에 가면 보통 3번은 음식을 가져오는 데 그 날은 한번 먹고 일어났어요. 옆의 아주머니가 또 묻는 겁니다. ‘아직도 다 안 드셨느냐’고요. 도저히 계속 앉아서 먹을 수가 없더군요”


신문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카운슬러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기분 상하는 일, 분통 터지는 일을 당하고 마땅히 털어놓을 데가 없으면 신문사로 전화하는 분들이 많다. 대개 “이럴 수가 있습니까”로 끝나는데 단골이슈 중의 하나가 한인들의 매너 문제이다. 아울러 한인들이 스스로 자주 지적하는 것은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는 걸 잘 못해”이다.

매너와 기다림의 미덕을 동시에 잃어버리는 곳이‘먹는 데’인 것 같다. 특히 결혼식 피로연 등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식사하는 곳에서는 식사가 가히 ‘전쟁’이다. 타운의 한 교회에서 얼마전 결혼식을 치른 한 가족의 말.
“식이 끝날 무렵 뒷자리부터 손님들이 일어나기에 바빠서 미리 떠나는 분들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 피로연하는 식당에 다들 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식이 끝나면 사람들이 몰릴테니 미리 가서 음식을 받아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먹을 것’이 아쉬운 시절도 아닌데 왜 아직도 “먹는 데만 가면 식탐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아울러 일반 식당에서 빈자리를 기다릴 때도 매너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일본식당이나 미국식당에 가면 손님들 대기석이 있는데 대개 한국식당에는 그런 공간이 없는 게 우선 문제이지요. 그렇다면 식당 밖에서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모두 문가에 서서 식사하는 손님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데 정말 식사하기 민망할 때가 있어요”

매너의 기본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배려의 자세가 몸에 밴 사람이 많을수록 커뮤니티는 품격 있는 사회가 된다. “한인타운만 갔다오면 열받는다”는 말이 이젠 그만 들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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