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라리 부처라 하지

2000-07-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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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

▶ 김병석<정신과 전문의, 뉴욕주립대 임상교수>

출근하다 앞 차의 번호판을 보게 되었다. “I”자 “M”자 그리고 DOG라고 씌어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I am (a) dog의 약자들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실소를 했다. 이 사람이 개를 무척 사랑해서 이랬을까, 아니면 자기도 개가 되고 싶어서 그랬을까 생각해 봤다.

귀여운 개는 강아지(Puppy)라고 부르지 ‘개’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의 인식으로는 사람을 천대하는 말로 쓰인다. 나도 이 번호판과 그 운전수에게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여태까지 보아왔던 자동차 번호판 중에서 몇 가지 재미있는 것들이 생각이 났다. 하나는 APHRODISI라고 쓴 것이요, 또 하나는 BRASSY라고 쓴 것이었다.


APHRODISI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하나 이것은 최음제 즉, 성욕을 돋구는 약을 말하는 것이다.

이 자동차 번호판을 보았을 때 나는 호기심에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감히 이런 것을 붙이고 다니나 싶어서 두 차가 나란히 서게 되는 기회가 왔을 때 그 운전수를 쳐다 보았더니 금발의 젊고 날씬한 여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 사람을 쳐다 보기만 해도 많은 남자들이 성적 매력을 느낄 것 같은데 왜 자동차 번호판까지 저렇게 쓰고 다녀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또 이 여자는 남자들을 쓸데없이 유혹해서 문제를 일으키겠다고 생각되었다.

BRASSY라는 말은 거칠고 뻔뻔스럽다는 영어의 속어이다. 이 차의 운전수는 한 70세 된 백인노인으로 꾸부정한 허리로 열심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할머니는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얼마쯤 가다가 내 앞차가 오른쪽으로 차선을 바꾸자 나는 바짝 옆으로 다가가서 그 운전수를 쳐다 보았다.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낀 험악하게 생긴 백인남자였다. 정말 ‘개’ 같이 보였다.

이러한 특수한 번호판을 달려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자기를 개라고 내세우는 사람의 행동이 개 같을 수 밖에 더 있을까. 그러니 이 사람도 나한테 물리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경고를 달고 다니는 것이다.

사람이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언행이 좌우된다. 이것은 정신분석 치료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끝났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은 하는 짓이 뻔뻔스럽고 건방져 대인관계가 나빠지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불안증세에 빠져 치료 상담을 오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자기가 못났다고 느끼는 사람은 떳떳하고 자신있게 행동을 못 해서 남한테 무시당해 우울증에 빠져 오는 수가 많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는 욕이 있다. 그리고 이조시대 무학대사와 세조의 대화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즉, 돼지 눈에는 남이 모두 돼지로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 하나가 “나도 부처다”하고 다니거나, 교리상 용납되지 않는다고는 하겠지만 “나도 하나의 예수다”하는 마음으로 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고 애쓰고, 서로를 그렇게 보아주고,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면 이 세상은 정말 부처의 세계, 예수의 세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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