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종 갈등과 한국인 이미지

2000-07-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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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이드

▶ 옥세철 논설위원

영어로 된 말을 한국말로 번역하려면 퍽 어려운 경우가 많다. ‘Retail Racism’이란 말이 그렇다. 직역해 소매 인종차별? 아주 어색하다. 과거와 같이 공공연한 형태의 인종 차별이나 분리는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게 이뤄지는, 아주 미묘하고 소소한 형태의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말로 들린다. 요즈음 인종문제와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말이 바로 이 ‘리테일 레이시즘’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국의 인종문제를 집중 조명하는 시리즈 연재와 함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인종 분리의 제도적 틀을 무너뜨린 민권법이 제정된지 35년이 지난 오늘 인종간의 벽이 얼마나 무너졌는가를 알아보는 여론조사다. 미국의 인종관계는 과거에 비해 월등히 개선됐다는 게 이 여론조사의 일차적 결론이다. 이같은 결론에는 그러나 ‘외형적으로 볼 때’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한꺼풀 들치고 들여다 보면 미국인들은 계속 인종적으로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고 각 인종집단간의 관계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여전히 긴장상태에 있다는 게 이 여론조사의 또 다른 결론이다.

비영리기구인 내셔널 컨퍼런스의 전국적 여론 조사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각 인종 및 민족집단간 접촉이 훨씬 빈번해지면서 인종간의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에 있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미묘한 인종차별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주요 여론 조사결과 새삼 확인되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은 ‘리테일 레이시즘’ 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와 함께 인종갈등 구조가 다변화, 복잡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재차 확인되고 있다. 아시안, 히스패닉등 새 이민그룹의 대두와 함께 과거 ‘흑-백’이라는 단순 구도의 인종갈등은 흑-히스패닉, 아시안-흑인등 갈등이 겹쳐져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내셔널 컨퍼런스 조사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간교하고, 염치없고, 비즈니스에 부정직 하다’는 이미지를 다른 커뮤니티에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 그림은 그렇다고 치고 그러면 코리안-아메리칸들은 다른 민족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역시 이민으로 세워진 다민족 국가 아르헨티나에서 실시된 한 조사 결과가 그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 ‘클라린’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장 싫은 민족을 묻는 질문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21%이상이 한국민을 꼽아 집시족(18.7%), 유태인(13.5%) 등을 앞서 ‘불명예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을 싫어하는 주 이유는 ‘너무나 폐쇄적이다’ ‘노동력을 착취 한다’ 등이었다.

인종문제가 아주 미묘한 이슈인 미국에서 이같은 직답적인 내용을 공개한 보고서는 찾기 힘들다. 그렇지만 LA시 인간관계 위원회가 연전 반이민정서 확산사태와 관련해 발표한 보고서는 한인에 대한 미주류의 시각을 어느정도 여과없이 노출하고 있다. ‘분열된 사회’ ‘구심점이 없는 사회’ 라는 게 이 보고서가 지적한 한인 사회. 한마디로 한인 커뮤니티는 다민족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는지 의심스런 시선을 쏟고 있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초안에는 한인 사회의 다른 치부들도 적시돼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뇌물공여등 한인 사회에서 이뤄지는 갖가지 추태들이 초안에는 들어 있었으나 정치적 고려와 함께 삭제됐다는 후문이다. 이와 함께 또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흑인 사회 지도자들은 한인이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민족이고 흑인을 비하해 쓰는 말이 최소한 8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인이 타깃이 된 증오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뉴욕주립대학에 다니는 한인 학생이 백인청년들에게 뭇매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다. 이 사건은 빙햄턴 대학 백인 학생들의 한인학생 집단 폭행사건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발생해 파란을 불러오고 있다. 당연히 한 목소리로 커뮤니티가 대처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떠오른다. ‘혹시 한인들은 다른 증오 범죄의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사회에 투영된 한인의 이미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찬찬히 돌아보아야 할 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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