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해하는 삶

2000-07-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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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칼럼

▶ 이은숙<자영업·샌프란시스코>

따르릉... “제게 케이크를 보내주신 테레사씨와 통화를 하고 싶은데요.” 생소한 목소리였지만 케이크를 언급하는 그녀는 금새 짐작되는 사람이었다. 닥터 한 치과의 간호사였다.

“참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그렇게 화를 낼 의도는 아니었는데... 지나쳤던 것 사과 드립니다.”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먹이는 소리가 전선을 타고 왔다.

“아니에요. 제 실수였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녀의 흐느낌으로 긴말을 나눌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했고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며칠 내 가슴에 무겁게 걸려있던 체증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치과에 예약이 된 날 하필이면 한 친구가 결근을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나. 바쁜데 일손까지 부족하니 도저히 예약시간을 지킬 수가 없어 30분쯤 늦을 것 같다는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아가씨는 그러라고 하더니 이름을 알려달라 했다. 테레사 리라고 했더니 금새 음색이 달라진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왔다. 거만하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다시 한번 예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 징수를 자동으로 하겠다는 통고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 떠오른 느낌은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라는 반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이성의 자제력을 잃게 했다. 어린아이 훈계하듯 나무라는 간호사 아가씨의 태도는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의 태도로 옳지 못하다는 것, 주인으로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로도 공정치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따지게 했고, 흑인인 그녀로선 백인도 아닌(?) 쪼그만 동양인 여자에게 지기 싫다는 듯 언성을 높였고 결과는 두사람 다 마음을 상하게 했다. 순간적인 경솔함으로 타인과 언쟁을 했던 일은 며칠을 두고 마음에 걸렸고 스스로의 행동에 반성을 하게 했다.

사과를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의 이면에는 외국인들에게 비춰질 한국인의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한 책임감도 포함이 되었다. 그래서 달콤한 케이크 한상자를 보내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더니 감격한 그녀는 눈물의 사과를 해왔다.

작은 배려... 작은 용서는 큰 기쁨을 전해준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소한 일들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흔하다. 화가 날 때, 감정이 이성을 앞설 때, 한 걸음씩 물러서서 생각하고 바라보자.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만 양보하면 일상은 훨씬 가볍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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