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직을 떠나는 이유

2000-07-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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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숙<샌프란시스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에 초등학교 선생이 되겠다고 하였을 때, 속으로 실망하였다. 남의 자녀들에게는 교사가 사회에서 필요한 직업이고 교사처럼 보람된 일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아들이 선생이 되겠다고 하기 전까지는 내가 한 말을 믿고 있었다.

막상 아들이 선생이 되겠다고 진지하게 나왔을 때, 무어라고 말하였던가. 아니 선생 아니고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선생 할래? 그럴라고 우리들이 허리가 휘어지도록 사립대학 등록금 마련하기 위해 고생한 줄 아니? 하면서 섭섭함을 금치 못하였다.

내 자식은 교사가 되지 않았으면 하였던 것은 교직이 그만큼 힘들다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힘든 만큼 보수가 많다거나 사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직업도 아니기에 내 자식도 남들처럼 잘 살았으면 하는 부모 욕심으로 아들이 선생이 되는 것을 달갑게 않게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교사처럼 힘든 일이 없는 것 같다. 교사가 되어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일을 하겠다는 변호사, 은행가, 사업가들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후 굳은 신념으로 교직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몇 년을 가르친 후, 못하겠다고 고개를 흔들면서 교직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된다.
몇 년쯤 일하다가 교직을 그만 둘 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손실은 엄청나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교사자격증을 받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의 교사양성 프로그램을 거쳐야 한다. 석사학위 정도의 교육을 받은 후에야 교사자격증을 받게 되고, 선생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 연수를 받아야 하고, 다문화를 알아야 하고, 장애아 심리를 이해해야 하는 등, 끝이 없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하여야 한다. 방과후 스포츠 코치며 드라마 코치, 시험 채점, 숙제 점검등 12시까지 일하는 선생들이 많다.

교직처럼 외로운 직장도 없다. 다른 교사들과 대화하는 시간은 복도에서 스치면서 인사하는 정도이니 초보교사에게는 더욱더 외로운 일이다. 다른 전문 분야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교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교실 문을 닫으면 혼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교직에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뒤떨어진 느낌이라는 호소를 자주 듣는다.

선생만큼 큰 책임을 감당하여야 하는 직업이 없다. 학생들을 두고 교실에서 잠시도 자리를 뜰 수 없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그야말로 화장실도 못 간다는 말이다. 아이들의 신체적인 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지적 향상을 책임져야 하고 의로움을 가르쳐야 하는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에 따른 수고의 대가는 어떠한가. 선생이 셋방살이도 하기가 힘들만큼 박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교사의 위치는 초라하기만 하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집세가 높은 지역에서는 교사 월급으로 방세조차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교직을 떠나노라 하는 선생들을 많이 본다.

의사가 한 오륙년쯤 일하다가 다른 분야로 이직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다.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인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분야에서 쉽게 이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오륙년쯤 가르치고는 교직을 떠난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하이테크 분야에서 고급 인력에 많은 보수와 스탁 옵션이니 하며 무지개꿈을 약속하기에 교사가 평생 꿈이었던 사람들도 학교 현장의 열악한 조건을 견디지 못하면 떠난다. 놀라운 사실은 하이테크 사장 집에서 일하는 베이비시터가 6만달러 봉급을 받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 첫해 봉급은 3만달러를 약간 넘을까 하는 현실이다.

전문인이면서, 노동시장에서 전문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교사들이다. 20세기 교육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21세기 학생들을 길러야 하는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심지어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가 말썽을 부리기까지 하여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끼며 떠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일까, 한인 부모들 중에 자녀들에게 선생이 되라고 권고하는 부모를 만난 적이 없다. 교사가 되겠다는 자녀를 말리면서까지 다른 길을 걷기를 원하는 이유가 그만큼 가르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힘들고 보수도 적은 직업을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권하겠는가.

자녀의 교육을 중요시하는 한인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자녀들이 교사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전문인이 되도록 수고하며 가르치는 교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라고 권하고 싶다. 카드 한장일 지라도, 꽃 몇송이일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우리 자녀들의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자. 진정으로 감사하는 학부형의 말 한마디는 가난하고 지친 선생님에게 보람을 느끼게 하는 활력소가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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