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과 과외열풍

2000-07-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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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그 지름길은 바로 대학시험이다."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중국에서 7월은 ‘검은 7월’로 불린다. 이 달에 실시되는 단 한 차례의 국가 대학시험 결과에 따라 수백만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장래 진로가 결판이 나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학입시 경쟁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대학 입시율은 평균 잡아 10대1 정도. 이처럼 문이 좁은 대학을 나와야 행세할 수 있는 게 중국 사회. 거기다가 일단 북경대 등 소위 초일류 대학을 나오면 일생은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서 과외 열풍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과외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한국이다. 과외를 법으로 금지했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또 과외 금지법이 위헌소송에 걸려 결국 위헌판결이 나온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과외가 아예 생활화되다시피 했고 그만큼 시시비비도, 또 부작용도 많기 때문에 일어난 사회현상이다.


"자식만은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 주고 싶다." "그 엄청난 과외비를 어떻게 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한인 학부모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 이민의 변’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한인 사회의 과외열풍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방학만 됐다하면 SAT 학원은 만원이다. 그도 모자라 일부 유명학원은 웨이팅 리스트까지 꽉 차 있다. 왜 이같은 모순된 현상이 발생할까.

"애를 그냥 나두면 어딘지 불안해요. 학원이라도 보내야 안심이 되지요." LA 한인타운 한가운데 살고 있는 주부의 말이다. "첫 애 대학 보낼 때만 해도 신경을 안 썼어요. 주변에서 과외를 시키는 집도 별로 못 보았지요. 한인타운 가까이로 이사 오니까 분위기가 그게 아니예요. 처음에는 글쎄 하는 입장이었는데 나중에는 걱정이 돼 둘째 아이는 10학년부터 과외를 시켰지요." 미국인 사회에 섞여 살다가 비교적 최근에 한인들과 접촉이 많아진 한 50대 주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대략 이런 식의 윤곽이 잡힌다. ‘우선 한인들이 많이 모인 지역일수록 과외열기는 더 뜨겁다. 또 과외를 안 시키면 찾아드는 불안증세는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이는 그런데 미주 한인사회에서 만의 현상이 아닌 모양이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도 과외 열풍이 보통 거센 게 아니다. 아르헨티나등 중남미 한인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쯤 되면 과외는 한국인의 제2의 천성이 돼 체질화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인과 과외열풍’ - 그 공과 과는 어찌됐든 연구대상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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