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리아타운의 이상한 풍토

2000-07-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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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칼럼

▶ 이철 <주필>

은사 한분이 미국을 여행하던중 예고없이 내사무실에 들렀다. 마침 점심때라 무엇을 드시겠냐고 물었더니 "우리야 뭐 설렁탕이나 곰탕이 제일 좋지" 하신다. 제자 두사람에게 연락도 하고 은사를 차로 모시고 온 사람까지 합치니까 6명이다. 은사께서 "설렁탕에는 소주한잔이 빠질 수가 없지"하셔서 수육한접시에 소주 한병도 시켰다.

여기까지는 식당측과 손님사이의 무드가 좋았다. 계산서를 보니 85달러다. 그런데 카드를 내놓았더니 자기네 식당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은사되시는 분이 "서울사람 현찰없으면 쓰러지지"라고 농담하시며 점심값을 지불하신다. 이일은 몇 년이 지났건만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며칠전에는 이런일도 있었다. 서울에서 동창부부가 미국여행을 왔다. 관광회사에서 가는 여행코스가 좋은 선물이 될 것같아 여행사에다 전화했다. 크레딧카드로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현찰을 내시면 10% 디스카운트 해주지만 카드를 사용하시면 신문에 난 요금보다 10%를 더내야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캐쉬로 내는것과 카드로 결제하는 것의 차이가 20%나 된다. 이건 도대체 어디식 영업방침인가. 몇백달러씩 현찰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서울에 여행갈때면 으례 친척이나 친구들이 "간 좋아지는 영양제 사와라""당뇨병 환자가 먹는 무슨 무슨 비타민 사와라"등등 영양제 종류에 관한 주문이 많다. 선물센터에 가서 영양제를 4병 집어 들었더니 220달러다. 카드를 내밀었더니 이곳에서도 "카드는 안받습니다"다. 왜 안받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손님들이 몇백달러씩 쇼핑을 한후 돌아가서 카드분실 신고를 하는 바람에 손해본 케이스가 여러번 있었다고 했다. 미국사는 사람은 ID를 보자고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니까 "귀찮아서 현찰로만 받아요’한다.

코리아타운의 어느 가게에 들러 전기제품을 사려는데 "현찰로 사시면 세금을 안내도 좋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세일즈택스 떼어 먹는 것은 범죄에 속한다. 손님에게 "우리 함께 공범이 됩시다"라는 소리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냥 얼마 깍아 주겠다고 말하면 아무일 없을 것을 왜 세금을 안받겠다는 식으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반면 적반하장인 손님도 있다. 가게주인이 정식으로 세금을 계산하면 화를 버럭내는 손님도 한두명이 아니다. 그러면서 "이 가게에서는 왜 세금을 받죠? 다른데에서는 다 면제해 주던데…"라면서 마치 세금 안내는 것이 자신의 권리인 것처럼 큰소리친다.

이 모든 것들이 한인가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현상들이다. 왜 이들은 카드결제를 기피하는가. 손님의 눈에는 세금을 떼어 먹으려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가게의 이미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상인은 때때로 단골손님을 확보하기 위해 밑지고도 장사할줄 알아야 한다. 돈버는 것만이 목적일 수는 없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매너다.
손님 입장이 난처한데도 캐쉬만을 고집하는 가게주인은 ‘돈의 노예’나 다름없다. 돈에 대한 집착이 너무 지나치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처럼 비치는 법이다.

비즈니스맨은 손님을 생각할줄 아는 멋이 있어야 한다. 오늘만 보고 내일부터는 다시 안볼 것처럼 영업한다면 좋은 단골손님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좋은 손님은 좋은 가게를 볼줄 알고 좋은 가게는 좋은 손님을 알아보는 눈이 있는 법이다. 관광지의 상점들이 일반적으로 비싸고 서비스가 엉망인 것은 내일 다시 그손님을 안보기 때문이다.

타운의 고객은 모두 단골이 될 수있는 손님들이다. 타운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그날그날의 매상만 들여다 볼일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손님을 놓치지 않을까를 연구하는 일이다. 한때 코리아타운에서 잘나가던 가게들이 몇 년 지난후 문닫는 것을 보면 거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오늘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단골 만들줄 아는 상인이 진짜 장사를 할줄 아는 비즈니스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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