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떤 축하파티.

2000-07-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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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진<리돈도 비치>

한국에서 얼마전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희생자들의 영령들을 엄숙히 추도하는 날 광주시내 한 룸살롱에서 국회의원 당선 축하파티를 벌이고 국정의 최고위급인 장관과 국민정신문화 연구원이라는 요원들이 양주에 만취, 국민정신문화를 토론했다니, 옛 로마의 붕괴 직전 퇴폐한 집정자들과 타락한 귀족 및 의회의원들을 연상케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룸살롱 또는 단란주점 이라는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옛날 우리 구 사회의 기생집 문화의 존속이다. 겉으로 형상만 바꿔 놓았지 그 영업행태와 고객들의 주색잡기, 향락 행태를 보면 영락없는 기생문화이다. 낭만과 인간성이 빠져버리고 그 자리에 황금과 육질의 초고속 교환 등이 자리잡은 어설픈 자본주의 향락문화의 세기말적 표본이 들어선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정신적 지도자가 없다.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양태를 살펴보면 사회의 정치, 경제분야의 제도적 향상에만 급급했지 그러한 제도를 지키고 향유해야할 민초들의 내면세계(특히 물질문명의 파도와 인간기초이념 변화에 따른 가치혼돈에 대처하는)에 관해서 전혀 신경을 쓰고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어쩌면 그들 자신들이 “나,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국민정신, 도덕의 분야에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장관들이 뇌물을 먹고 외국에 나가서 주색잡기나 노름에 빠지고 하는 일까지 책임을 져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사회윤리와 국민 도덕정신은 자꾸만 병들어 가는 것이다. 민초들이 모두 어설픈 물질문명과 황금만능주의에 도취되었다 해도 지도자는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선·악의 구별에 있어 분명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철이면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중 빠지지 않는 다섯가지가 있다. 1. 교육문제. 2. 외교문제. 3. 노인복지문제. 4. 세금문제. 5. 미국의 가치 등이다. 마지막 다섯번째의 ‘미국의 가치를 지킨다’는 공약은 빠짐없이 나온다. 유의해 보면 한국의 대통령후보가 “한국의 가치, 한국의 유일한 도덕적, 사회윤리적가치를 지키고 보존하겠다”고 말한 것은 기억에 없다. 어떤 담화나 회견에서 있었는지는 몰라도 대통령 공약으로 나온 적이 없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대통령들은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에 과잉반응하여 내면세계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신세계가 법과 제도와 훌륭한 인프라보다 앞서야 된다는 극히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랬다간 국민으로부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따라서 표도 얻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대통령은 이미 민족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상실한거나 다름없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어떤 천직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스스로의 철학적 모럴과 거기에서 생성한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인격을 허물어뜨리는 중대한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고유의 가치’를 진정으로 지키고자 투쟁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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